빈

지난 하루를 돌이켜 보지만 아무 감흥이 없다.
빈 날이다.
아침에 비가 많이 와 차가 밀렸다. 예약된 치과 진료에 늦었다. 아래 쪽의 작은 어금니에 임시로 붙였던 보철물을 제대로 앉혔다. 입을 벌리면 여기저기 금으로 만든 이가 눈에 띈다. 몸이 늙고 늙어서 낡은 흔적을 메운 것이다.
어디까지 고치면서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은 열심히 고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공을 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마음에 드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빛이 나는 것들이다.
동료들은 4일 간의 연휴에 어디를 갈 지 고민스러워 했고, 어떤 회사는 빅데이터를 활용하여 지난 연휴에 어디가 붐볐는지 설명하기도 했다.
어린이날부터 어버이날까지 갑자기 생긴 이 긴 휴가가 맘 편하지 않은 이유는 또 뭔가.
그러고 보니 제대로 쉰 날이 거의 없었다.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는 것이 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건 그것대로 또 피곤했다.
입대 전 대학생의 두려움, 중간고사를 코 앞에 둔 부담, 면접을 준비하는 사회 초년생 같이. 마음 속 어딘 가에 존재하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큰 짐이 있는데, 그 짐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늘 맘에 걸린다. 책을 읽을 때도, 음악을 들을 때도, 산책을 할 때도 나는 그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다.
빈 날. 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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