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푸른소름 (1/10) 반전까지 투명한, 긴장감 없는 상투성

    모든 전개가 예상 가능했고 단 하나의 예상도 어긋나지 않았다. 심지어는 반전처럼 제시한 마지막 결말까지 이미 우리가 무수히 반복했던 장면이었다. 연출의 완성도도, 배우들의 연기도 아쉬운 면이 많다. 캐릭터가 상투적이다보니 그 묘사 역시 뻔하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불필요하게 늘어지는 장면이 많아 속도가 좀처럼 붙지 않는다. 강렬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유지해야 할 순간마다 어정쩡하게 분위기를 환기하려 하면서 작품의 긴장도…

  • 월남보살 — 비빔밥처럼 버무려진 한국의 지금

    미장센단편영화제 상영작을 하나씩 보다가, 예상치 못한 작품에 발이 묶였다. 김근호 감독의 ‘월남보살’이다. 베트남 엄마와 한국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고등학생이 신병(神病)에 걸렸는데, 몸에 자꾸 외국 신이 내려 무당이 내림굿을 거절한다. 엄마와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 신을 받으라고 하는 아빠. 한국에서 나고 평생을 한국에서 살았는데? 결국 친한 친구들과 함께 직접 내림굿을 진행한다는 이야기. 도입부터 흥미진진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 와일드씽 (6/10)

    몇몇 장면에서는 분명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그 웃음들 사이의 간격이 너무 길었다. 전반적으로 느슨하고, 솔직히 지루한 순간들이 더 많았다. 영화는 우리의 삶에 3번의 기회는 너무 적다고, 수십 번쯤은 있어야 하지 않냐고 말한다. 듣기 좋은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자본의 세습은 이미 학습의 세습과 차별로 이어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 번의 기회를 갖는 것조차 쉽지 않다….

  • 명장 (6/10)

    영화 정보 2007년 진가신, 엽위민 감독 작품. 원제는 投名狀(투명장) 1860년대 청나라 태평천국의 난을 배경으로 한 실제 역사 사건을 극화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 주연. 장철 감독의 1973년작 ‘자마’를 리메이크한 작품 황비홍은 없고, 방청운만 남았다 남아당자강(男兒當自强). 황비홍이 이연걸이고 이연걸이 황비홍이던 시대가 있었다. 꽤나 자주, 넷플릭스 시작 페이지에 등장한 옛날 배우에 끌려 영화를 보게 된다. 이번에는 이연걸이었다. ‘이연걸…

  • 마이클 (6/10)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산 카세트테잎은 마이클 잭슨의 첫 번째 솔로 앨범이었다. 이제 막 빌보드 차트라는 게 있다는 걸 알아가던 시절, MJ의 음악은 그때까지 들어본 어떤 음악과도 달랐다. 팔등신의 늘씬한 체형, 처음 보는 춤, 처음 듣는 박자와 호흡. 나는 그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그가 네버랜드라 이름 붙인 거대한 저택에서 홀연히 세상을 떠난 지도…

  • 만달로리안과 그로구 – 익숙함이 주는 위로 (5/10)

    스타워즈를 좋아하게 된 건 아마 그 세계가 무언가를 쉽게 단정짓지 않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경계는 흐릿하고,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되고, 증오와 사랑은 같은 감정의 다른 얼굴처럼 맞닿아 있다. 규정하기를 싫어하는 내게, 스타워즈의 그 열린 세계관은 오래도록 편안한 피난처였다. 특히 〈만달로리안〉 시리즈는 각별하다. 시즌 1부터 3까지, 나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에피소드들에서 만도의…

  •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 빔 벤더스 (8/10)

    사진을 좋아하는 동료가 있다. 취향이 비슷해 이야기를 나누면 늘 즐거운 사람인데, 요즘 재미있게 본 영화를 물었더니 ‘퍼펙트 데이즈’를 꼽았다. 찾아보니 빔 벤더스 감독 작품이다. 빔 벤더스. 전후 독일 사회의 불안을 스크린 위에 사실주의로 새긴 감독, 내가 대학 시절 즐겨 찾던 이름이다. ‘베를린 천사의 시’, ‘파리 텍사스’, 그리고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페널티킥을 앞에 둔 골키퍼의 불안’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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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래곤볼 Z를 다시 보면서 —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토리야마 아키라의 세계

    어쩌다 드래곤볼 Z를 다시 보게 되었다. ‘Z’를 ‘지’라고 읽어야 하는지 ‘제트’라고 읽어야 하는지조차 헷갈리는 채로.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아 한글 음성으로 감상하고 있는데, 그게 또 나름의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이번에 보면서, 어릴 때는 미처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토리야마 아키라라는 작가의 천재성이랄까 — 그것이 이제야 보이는 것이다. 소년만화의 어려움 토리야마 아키라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 무명 (Hidden Blade, 2023) (7/10)

    무명 (Hidden Blade, 2023) 양조위의 얼굴에 이끌려 시작한 영화였다. 그런데 막상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왕이보였다. 젊고 잘 생겼다. 그러나 양조위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영상미만큼은 타협이 없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영상미다. 배우들의 얼굴을 따라 굴곡지는 섬세한 조명,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꽉 찬 구도. 꽉…

  • 램 (Lamb, Dýrið, 2021) (7/10)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 표기가 붙어 있지만, 막상 보고 나면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니다. 잔인하지도, 공포스럽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장르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램’이라는 영화다.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영화답게, 영화는 그 땅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상상을 충실히 보여준다. 춥고 차갑고 넓고 황량하고 거칠고 밤이 길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느긋하다. 영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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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화양연화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화양연화의 숨겨진 결말에 대해 장만옥과 양조위가 이야기하는 클립을 발견했다 이 클립이 마음에 들어 후배에게 전달했는데, 놀랍게도 후배는 아직 화양연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그럴만도 한 것이 화양연화가 개봉한 게 2000년, 벌써 25년 전이다. 내가 아직 과거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가을 비가 툭툭툭 근사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일요일 아침에 커피를 한 잔 내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