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들
왜 걷는가, 라는 질문 1,200킬로미터를 두 달 가까이 걸어야 하는 여정. 왜 가는가. 이 질문을 오헨로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던지면, 답이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 처음 출발할 때의 이유와 돌아올 때의 이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병든 몸으로 떠나는 사람 오헨로의 전통적인 순례자 유형 중 하나는 중병을 앓은 사람이다. 역사적으로도 시코쿠에는 병이 나은 것에 감사하거나, 낫기를…
왜 걷는가, 라는 질문 1,200킬로미터를 두 달 가까이 걸어야 하는 여정. 왜 가는가. 이 질문을 오헨로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던지면, 답이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 처음 출발할 때의 이유와 돌아올 때의 이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병든 몸으로 떠나는 사람 오헨로의 전통적인 순례자 유형 중 하나는 중병을 앓은 사람이다. 역사적으로도 시코쿠에는 병이 나은 것에 감사하거나, 낫기를…
오헨로 — 1,200년의 길을 걷는다는 것 일본 시코쿠(四国) 섬에는 조금 특별한 길이 있다. 88개의 사찰을 차례로 돌며 걷는 순례길, ‘오헨로(お遍路)’다. 총 거리는 1,200킬로미터에서 길게는 1,400킬로미터. 걸어서 완주하려면 두 달 가까이 걸린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약 800킬로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오헨로가 얼마나 긴 여정인지 짐작이 간다. 그런데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해마다 수십만 명이 시코쿠를 찾고,…
어떤 연주는 첫 음만 들어도 연주자의 태도가 느껴진다.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의 음악이 그렇다. 화려함이나 과시와는 거리가 있는데, 이상하게도 곡 전체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는 힘이 느껴진다. 소리를 밀어붙이지 않으면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균형감 — 그게 그녀 음악의 첫인상이다. 알리스 사라 오트는 1988년 독일 뮌헨에서 일본인 어머니와 독일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일본계 피아니스트다. 네 살에 피아노를 시작해…
텔테일 게임즈는 지금은 비주류가 되어버린 어드벤처 장르를 고집하는 몇 안 되는 회사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워킹데드, 더 울프 어몽 어스, 그리고 디스패치까지—이 게임들은 엄밀히 말하면 ‘게임’이라기보다 한 편의 인터랙티브 소설에 가깝다.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중심으로, 간단하지만 심리를 파고드는 선택지와 그에 따른 반전, 부담스럽지 않은 퀵타임 액션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특히 인상적인 건 선택의…
생일을 핑계 삼아 식구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선물을 나눴다. 언젠가부터 가족의 생일은 축하의 자리이기보다는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근황을 나누며 조금은 괜찮은 음식을 먹는 자리가 됐다.
나는 체 게바라를 좋아한다. 20세기의 마지막 게릴라. 성공한 혁명에 안주하지 않고 죽음으로 끝나는 또다른 전투를 시작한 혁명에의 의지와 신념. 투철함과 명석함, 솔선수범의 태도. 물론 시가를 빼어문 넉넉한 미소와 턱수염도 좋아한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헌신하겠다. 나는 한국의 락밴드 들국화를 좋아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음악성. 내 청소년기를 위로해준 허스키한 목소리, 거친 가사와 긴 파마머리의 청년들. 나는…
일우: 온 세계에 내리는 비처럼 (법비라고도 함) 항마촉지 수인: 항마촉지인은 대개 석가모니불. 깨달음을 얻고 땅의 신에게 그것을 증명하라고. 강의실 전면의 석가모니불, 좌측에 아난존자, 우측에 가섭존자 (봉은사에 동일하게 배치된 불상이 있다) 아난존자가 부처님의 사촌이자 으뜸 제자였다면 가섭존자(데바닷자)는 아난다의 형이면서 석가와 적대시했던 예수의 유다 같은 존재였던듯 하다. 윈각도랑하처, 현금생사즉시: 합천 해인사 장경각 입구에 걸린 주련. “깨달음을 이룰…
2021년 겨울 세번째의 암수술을 마치고 몸이 건강해지면 종교를 가져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그것은 나를 종교에 귀의시키는 과감하고 맹목적인 수준은 아니고 일상 생활을 돌아보는 어떤 형식을 갖추는 것에 가까울 터이다. 한국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 기독교는 일단 제외. 그리고 기독교는 개인의 삶에 간섭이 심하고 또한타 종교에 배타적인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와 동생이 영세를…
불과 두 해 전만 해도 추석이나 설 같은 긴 연휴 기간에는 어딘가로 놀러가자고 했지만, 추석에 제주를 한번 경험하고 나서 그 계획은 바로 접었다. 생각보다 비싼 교통비와 숙박비, 전반적인 지출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몇 해 전 어머니는 할만큼 했다며 30여년 넘게 챙겨오던 아버지 제사를 종료했다.물론 제사 역시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의식이니 제사가 없어졌다해도 명절마다 식구들이 모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