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바스코 핫소스로 만든 닭볶음탕
|

타바스코 핫소스로 만든 닭볶음탕

어찌된 일인지 병상에 동생이 누워 있었다. 큰 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술을 앞두고 있어 식구들이 모두 모였다. 작은 병실이 가득 찼고 앉을 자리가 없었지만 애써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준비한 매트를 병실 바닥에 깔았고 식구들은 엉덩이만 겨우 걸친 채 둘러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는 늘 이런 준비가 넘친다.

타바스코 핫소스로 만든 닭볶음탕

아내가 ‘타바스코 핫소스로 만든 닭볶음탕’을 꺼내며 말했다. “병원 밥 맛이 없어서 한번 만들어 봤어요. 요즘 유행하는 메뉴래요”

큰 보울에 담긴 닭 볶음탕을 매트 한가운데 놓고 그 주위로 김치볶음과 장아찌 같은 밑반찬이 깔렸다. 병상 옆의 전기 밥솥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이 한가득 있었다. 어머니께서 일회용 밥그릇에 밥을 한공기씩 담아 나눠주었다.

식구들은 왁자지껄 식사를 시작했고 동생은 이 모든 풍경이 부끄러운지 창밖만 내다 보고 있었다. 먹어야 사느니, 빨리 먹고 치우자느니 하는 와중에 아버지께서 병실에 들어섰다. 식구들이 잠시 멈칫하는 틈에 아무 말 없이 동생의 옆 자리에 자리를 잡았고 어머니께서 밥공기를 하나 건네 드렸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아버지께서 입을 떼었다. “닭이 맛있네”

아내는 기쁜 미소를 떠올렸고, 나는 비록 이곳이 병실이었지만 오랜만에 모두가 모여 밥을 먹는게 이상하게 반갑고 기쁘고 뜨거웠다.


지난 11월 수술 이후 제대로 잠을 잔 날이 며칠 없었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거나 새벽에 잠이 깨는 일이 반복되었고 그런 날이면 어쩔 수 없이 낮잠을 자게되고 다시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잠결에 기분이 좋아져, 좀 더 자주 다같이 모여서 식사하자고 아버지께 말씀드리려고 하다가 잠이 깼다.

별것도 아닌 ‘같이 밥 먹는 일’에 그렇게 기분이 좋아졌는지 그제서야 알아챘다. 내 기억에는 그리고 아마 동생의 기억에도 식구들의 화목한 식사 자리가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에 남는 시간이란 결국 별 것 아닌 일상이었다.

Similar Posts

  • 거제, 따뜻한 겨울 바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 가장 큰 힘이 되주었던 친구이자, 선배이자, 형인, 옥세진.그 형이 살고 있는그리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내려가야겠다고 맘 먹었던거제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겨울바다, 그것도 남해의…결혼식에도 찾아가지 못했던 불충이 어떻게인들 지워지겠으랴마는힘들게 고른 선물(비키의 추천으로 전동칫솔을 샀는데, 신혼에 잘 들어맞는 선물이다)을 사들고 맘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 첫째날 12/12 pm.09:001년간 한팀에서 지지고 볶던 오정아씨의 퇴사를…

  • 2008 가을, 부여에 다녀오다

    만수산 무량사 무량사 5층석탑 빛 바랜 연꽃 창호문과 연꽃 시간이 지나간 문 연꽃과 흔적 돌 속에 숨은 아들 雲 거북이 마저 백제의 미소 붉은 바람 정림사지 5층석탑 관련된 글: 웹툰의 특징과 볼 만한 웹툰 소개 등산 이세돌, 2연패 20대 국회의원 선거 what is your main focus for today? 혼란한 세상 부끄러움 세번째 연골주사를 맞다

  • 나의 환칭은… 사루만?

    출근 길에 김승희의 소설 ‘진흙 파이를 굽는 시간’을 읽었습니다. ‘조지아’라는 이름에 대해 거론하면서, 롤랑 바르트의 환칭(antonomasia)을 건드리고 넘어가더군요. (네이버 백과사전은 스펠링이 틀렸습니다. antonomasia가 맞습니다. 야후 백과사전도, 엠파스 백과사전도 스펠링이 틀리게 나옵니다. 흠…)어쨌건 그 대목에서 나의 환칭은 무엇일까를 잠시 생각해 봤습니다. 사랑에 목숨을 걸지만 자존심과 자의식이 강하고, 속 마음을 거의 드러내지 않으며, 타인의 틈입을 쉽게 허락하지…

  • 강을 건너다

    그 곳에서는 또 다른 형태로 삶이 있었다. 큰 강을 사이에 두고 강 이쪽은 현재의 지구와 비슷하지만 훨씬 덜 분주하고 훨씬 더 깨끗한 일상이 있었고, 강 건너 저쪽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강을 건너간 사람들과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크고 작은 이별이 쉴 새 없이 진행됐고 사람들은 조용히 강을 건너갔다….

  • 구글 수표 도착

    $107.15.지금은 adsense 광고가 포스트와 코멘트 사이에 들어있지만 그간 이 블로그의 adsense 클릭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adsense를 최상단에 노출하기도 했었고, 포스트 상단에 넣거나 포스트의 제목과 글 사이에 넣기도 했었다. 별도의 칼럼을 만들어 글의 중간에 삽입하거나 광고의 수를 늘리거나.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위의 구성대로 할 경우 현재의 구성보다는 훨씬 더 많은 클릭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 오나니 마스터 쿠로사와 (10/10)

    때 아니게 만화를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비록 한국 사회에서 만화의 입지는 음악과 미술, 문학 같은 정통 예술에는 한참 떨어지지만, 역시나 살을 에이는 치열함과 진지함으로 가득한 창작의 세계입니다. ‘오나니마스터 쿠로사와’는 정식으로 발간 되지 않은 일본 아마츄어의 작품입니다만, 멋진 작품입니다.생생한 캐릭터, 기승전결이 뚜렷한 플롯과 반전을 거듭하는 갈등 구조, 그리고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날카로운 문제 의식과 그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