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 밤

온기가 남아있지만 끈적이지 않는다.

시원하거나 차가운 느낌도 없지만, 살갗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조금 낮아진 것만으로도 가을 생각은 자연스럽다.
또 하나의 계절이 이렇게 반복되고 있다.

둘째가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치열한건지 비열한 건지 알 수 없는 내 삶에 넌덜머리가 나기 시작했다.
사이드 미러 뒤로, 한 쪽 헤드라이트가 나간 트럭 한대가 엉금엉금 따라오는 모습이 기괴하다.

Similar Posts

  • |

    마르셀의 위안

    마르셀은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여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마르셀의 고민이 어쩌면 존재론적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마르셀은 차라리 정신적인 통증이 있어 약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마르셀은 자전거를 타면 마음을 무겁고 어둡게 만드는 끈적한 호흡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뒤로 풍경이 지나가면서 그 침침한 끈적함들도 떨어져 나가…

  • 마법의 장미

    6월 27일에 장미를 모아라. 가능한 최대로 붉고 활짝 핀 장미를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목격자가 없도록 주의하면서 꺽어 방으로 옯기고 숯과 유황이 있는 왕겨가 담긴 접시나 기구 위에 올려 놓는다. 약 5분 동안 연기 위에 장미를 올려놓으면 꽃에 놀라운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장미꽃이 식기 전에 당신과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힌…

  • PSP homebrew의 혁명, Devhook 0.43

    PSP 철권을 돌려볼까 하고 loader를 찾아보던 중, devhook 0.43이 나온 것을 알게 되었다. 돌려보니 이건 혁명적인 툴이 아닌가!로더는 그간의 펌웨어들을 임의로 선정하여 구동할 수 있고, 구동된 펌웨어는 마치 업그레이드를 한 것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돌아간다. 쉽게 말하면 펌웨어의 업그레이드와 다운그레이드가 마음대로 되는 것이다. 그간 구동되지 않아 방치해둔 ISO 파일들 몇개를 2.6 firmware환경에서 돌려보니…

  • 다시, 일상으로 II

    작년 6월 1일 복직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저런 결심을 붙여가며 각오를 다졌었는데 1년의 회사 생활이 지나고 나니 그 각오와 다짐은 온전히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자기 방어기제였던 것 같습니다. (재택 근무하는 날이 좀 더 많긴 하지만) 출근을 하고 안건을 토의하고 보고를 하고 논쟁하고 할 말과 감정을 속으로 감추는 일들은, 인생을 즐겁게 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는…

  • 패트릭 스웨이지

    장마가, 비릿하게 계속되고 있다. 어두운 하늘의 어딘가에 낡은 문이 생기고 그 문을 열고 심장 모양의 마스크를 뒤집어 쓴 마법사가 나타난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여름 밤이다. 왜 나는 이 시간에 패트릭 스웨이지를 검색하고 있을까. 모처럼 일찍 잠 들기 위해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운 지 두시간 째, 영혼은 띠끌 하나 없이 맑다. 잠은 커녕 이대로 원고지…

  • 개심사 다녀오다.

    2004년 9월 18일, 비온 후 갬. 개심사에 다녀오다.개심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나, 무척이나 오래 전 기억이어서 길도, 절도, 풍광도 낯설기만 하다. 예전엔 서해대교가 없었고 지금은 서해대교를 지나 당진까지 바로 갈 수 있다는 것. 알프스 같은 풍경. 한우품종 개량 사업소. 개심사 입구, 저수지. 마음을 씻고 마음을 열고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을 오른다 연못, 외나무 다리. 개심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