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드, 악기 끝을 올려봐

키드는 재즈 악단 TOGB (The Original Genius Band)의 신입 트럼본 주자였다. 회사로 치면 인턴이나 수습 같은 멤버로 다른 단원들에게는 연주자라기보다 그저 햇병아리일 뿐이었다.

키드는 새로 맞춘 감색 조끼를 입고 번쩍이는 트럼본을 들었지만 관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어 무대 한 쪽에 서있는 마네킹 같았다.

TOGB의 단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연주를 시작한 경우가 많아 나이가 40이 되지 않아도 연주자로서의 경력이 20년이 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게 키드는 오래 전 자신의 모습과 같았다. 지난 세월 내내 악기를 끌어안고 지낸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연주를 계속할 것이다.

조금 낡았지만 딱 들어맞아 기품있는 옷, 시간의 호흡이 느껴지는 짙은 금색 악기들. 그들의 웃음 소리에서는 그루브가 느껴졌고 농담 한 마디에서도 시간이 배어나왔다.

키드는 악기의 음을 맞추고 애드립을 하는 단원들의 모습에 자신의 미래를 겹쳐 놓고 볼 수 없었다.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공연은 이제 막 시작될 참이었다.

연주 내내 키드의 트럼본 소리가 묘하게 낮게 깔렸다. 키드는 악기가 이상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극복할 수 없었다. 트럼펫과 색소폰이 키드의 트럼본을 대신해 치고 들어왔고 그렇게 첫 연주는 무사히 넘어갔다.

무대 뒤에서 키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입이기는 하지만 그에게도 연주가로서의 자존심이 있었고 그래서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원들 역시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평소의 농담을 주고 받았다. 대기실에는 평화가 흐르고 있었지만 키드의 마음은 불만과 불안으로 어지러웠다.

키드는 다음 연주를 고민하며 악기를 조율해 봤지만 여전히 트럼본은 생각보다 낮은 음을 내고 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의 실수는 스스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설령 키드의 트럼본이 빠진다 해도 공연은 아무 일 없이 화음을 맞춰 나갈 테지만 말이다.

대기실로 매니저가 들어왔다. 그는 다음 연주는 좀 더 밝고 높게 가자고 했다. 왜냐하면 밖에 시카고의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를 피해 연주를 찾을 관객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헤이, 키드. 아까 보니 음이 자꾸 처지던데, 좀 더 올려줄 수는 없어? 뭐랄까 혼자서 너무 튄다구”

매니저는 사람 좋은 웃음을 날리며 눈을 찡긋하고는 무대로 돌아갔다.

“악기 끝을 올려봐”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키드는 자기를 향한 조언임을 알아챘다. 뒤를 돌아봤지만 눈을 마주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원들은 악기를 닦거나 시거를 피워 물거나 실 없는 농담을 주고 받을 뿐이다.

키드는 그 말대로 악기 끝을 올리며 코드 하나를 불어봤다. 놀랍게도 트럼본의 음정이 조금 올라갔다. 좀 더 올려보니 소리도 따라서 올라갔다. 키드는 서둘러 악보를 펼치고 오선지 위 음표들의 높낮이에 맞춰 트럼본을 흔들며 연주해봤다. 키드가 원하던 그 음들이었다. 정확하고 세련된. 그러나 어디에도 갇히지 않은 음들.

누구의 조언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키드도 그냥 혼잣말을 내뱉었다.

“전 이 일이 정말 좋아요”

어느 새 대기실로 돌아와 키드의 연주를 듣고 있던 매니저가 단원들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눈을 찡긋거렸다.


이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전적으로 최근에 Jazz를 틀어놓고 살았기 때문이다. 영혼을 팔고 싶은 음악들. 게다가 내 직업과 내 일의 오래된 괴리에서 오는, 그래서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긴장감에 대한 반작용까지 더해져서 말이다.

아직도 쉴 날이 많은 긴 연휴의 어느 날 아침. 꿈이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기려고 했는데 며칠 사용하지 않은 만년필이 굳어 글씨가 나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청소를 했다.

좋은데, 불편하다. 쓰지 않아도 굳지 않는 만년필이 곧 나오겠지만 (이미 볼펜으로 나온 것인가) 만년필은 쓰지 않으면 굳어야 정상이다. 두뇌와 같다.

창 밖 아스팔트가 비에 젖어 윤기를 내고 있다. 지나는 사람이 없고 촉촉함이 느껴지는 아스팔트는 그래도 봐줄만 하다.

키드처럼, 나도 더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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