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 우리 (9/10)

먼 훗날 우리 (9/10)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리우는 중국은 이제 문화를 만드는 데에서도 뚜렷하게 앞서는 영역이 있다.

먼 훗날 우리 (9/10)

매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나는 젠칭과 샤오샤오, 도입부는 첨밀밀을 떠 올리게 만든다.

무채색의 화면은 홍상수를 떠올리게 만들고 메시지 보드를 들고 서 있는 여러 사람들은 러브 액츄얼리를 떠올리게 만들지만, 이 작품에서 감정이 끓어 올라 눈물이 고이게 만든 것은 무언가와 비슷한 장면이 아니었다.

많이 나오지 않고 대사도 별로 없는 젠칭의 아버지, 특히 젠칭의 아버지가 샤오샤오에게 남긴 편지였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옮기면 이렇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자식이 잘 지내는 것 뿐이다. 자식이 누구와 함께 하든지, 무엇을 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연이 꼭 혈연이 되는 것은 아니어서, 샤오샤오가 젠칭과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이미 가족이다. 언제든 돌아와라

편지에 드러난 기대와 신뢰는 전형적인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내가 이 편지에서 감동을 받은 이유는 이 글이 아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아들의 전 여자친구에게 보낸 것이라는 점이다.

젠칭과 샤오샤오의 질긴 인연은 단순히 만나고 헤어진 남과 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둘이 가장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도 공감할 수 있다. 젠칭과 샤오샤오의 만남과 행복, 운명 같은 헤어짐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장 큰 극적 요소이긴 하지만, 어째서 젠칭의 아버지는 샤오샤오가 가족같은 인연이라고 생각했을까?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적당히 괜찮다.

서서히 변하는 남자와 여자처럼 조금씩 발전하는 베이징의 모습도 적당했고, 젠칭과 샤오샤오의 유채색 삶이 담겼던 큰 쇼파와 좁은 방도 적당히 누추하고 적당히 아름다웠다. 게임으로 성공하는 젠칭의 여러 에피소드들- 아버지가 사준 커맨드앤컨커, 징첸이 즐기는 워크래프트, 젠칭이 만든 sns 게임 등-도 적당했다. 가끔씩 등장하는 멋진 사진 컷과 조감 씬들도 적당했다.

무엇보다 감정을 억지로 자극하지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후회와 아쉬움-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을 툭 건드려 놓고 지켜보는 연출이 적당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첨밀밀의 현대판이기도 하다.

남과 여, 만남과 헤어짐, 망각과 기억, 후회와 아쉬움, 인연과 운명…

나와 헤어져서 다른 사람과 잘된다면 화가 날테니 나보다는 불행하지만 그래도 잘 되었으면 싶은 사람, 언젠가 백내장으로 눈이 멀어도 손을 잡으면 누군자 알아낼 수 있는 사람말이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라고 했지만, 어쩌면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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