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1/100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새해가 되었다고 뭔가를 시작하는 것은 경박스러워보이지만, 손을 놓고 있던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올해는 책을 좀 읽어야겠다. 처음 펴든 책은 ‘시집’이다.

1/100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허연.

본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서울 태생이고 66년생이다. 작금의 한국에 사는 40대가 대개 그렇듯이 불안정한 미래에 몸서리치고 있다. 시인은 이런 개인적인 불안과 공황, 쓸쓸함과 당위의 일상을 통해 나와 당신, 그리고 세월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지 진술하고 있다.

마흔이라는 그 나이는 ‘혼자 술을 먹는 사람들을 이해할 나이’이며 또한 그 나이는  ‘때 묻은 나이’이며 또한 ‘죄와 어울리는 나이’이기도 해서, 가끔 그는 ‘그늘에 앉아 이 여행의 끝을 생각’하면서 ‘나는 겁쟁이다’라고 자학하기도 한다.

‘스무 살쯤 차이 나는 여성이 여자로 느껴질 때 ‘사는게 뭔지’하는 생각을’ 하지만, 시인에게도 빛나던 때는 있었다. 시인도 ‘한 두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고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나은 처지라고 생각하며 외로움을 버틴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세상의 색은 ‘푸른색’이었으며 이제는 내게 없는 색이다. 그래서 ‘섭섭’하다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진실하지 않’은 어딘가로 월급을 받기 위해서 출근하는 동안 엘리베이터 앞에서 ‘욕을 내뱉’거나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수족관 안에 뒤집혀 있는 도미를 보며 ‘용서한 자의 자태’라고 위로해 보지만 그것은 자신의 초라함을 위안하는 것이며 외려 시인은  밤마다 ‘사나운 백상아리가 되는 꿈’을 꾼다. 그리고 ‘비누를 만들듯 폭탄을 만들어’ 모든 것을 파괴하고 ‘녹아내리는 도시를 보며’ 이 세상을 에덴으로 되돌리는 방식으로 사랑을  이룰 거라고 말한다.

그런 날은 아마도 ‘형 좀 추한 거 아시죠’라는 소리를 들었을 게다.

이제 시인은 자신을 ‘말없이 바퀴나 굴리는 낙오자’라고 생각하고 ‘늘 작년 이맘때쯤처럼’ 살고 있다고 느낀다.그리고 그것은 ‘세상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고 밥이나 먹고 살기로 작정’한 날부터라고 하지만 누군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 있으랴. 바퀴를 굴리는 시지프스의 댓가없는 무한한 노동,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놓고 사는 가치에 대한 환기.

커피를 쏟다
 
산의 한쪽 어개가 날아가 버린 날, 난 그저 통조림 뚜껑을 열었고, 평등을 외치는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 그들과 나의 폐활량 차이를 궁금해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몇개의 산맥을 넘어가 버린 날도 난 그저 노트북에 커피를 쏟았을 뿐입니다. 다 세월 속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마음에 남을 뿐 지나가 버린 일입니다. 책상 모서리에 무릎을 부딪히는 일이나 후진하다 담벼락을 들이받는 일조차 원래 일어나기로 되어있던 일.
 
나는 언제나 내 강물을 보고
당신은 당신의 강물을 보고
 
그나마 세월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만 겨우 알았을 뿐입니다.
원래 일어날 일들이었습니다.

Similar Posts

  • 2. 마음을 낚는 이야기꾼 웹소설 작가 되기

    이전에 읽었던 작문 서적이나 시나리오, 희극 작법 등에 관한 책과는 많이 다르다. 작가 서문도 게임 레벨업 이야기가 등장할만큼 다른 형식과 내용이다. 특히나 이 책을 꺼내기 전에 오래 전에 읽었던 시드 필드의 ‘시나리오 쓰는 법’을 뒤적거리며 추억에 잠겼던 터라, 서문에서부터 눈쌀이 찌푸려졌다. 웹 소설을 싸봐야겠다고 계획한 이유는 나를 내려놓고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근거 없는…

  • 소설. 6/100 아름다운 아이.이시다 이라

    4teen에 이어 이시다 이라의 작품에 다시 손을 댔다. 이 작품은 습작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소재와 플롯은 적당한 재미를 담보하는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고반복적으로, 이유없이 전환되고 있는 인칭의 변화가 가져오는 혼란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어 놓는다. 이시다 이라는 여기서 끝내기로 한다. 관련된 글: 소설. 4/100 4teen. 이시다 이라 소설. 플라이 대디 플라이. 가네시로 카즈키 소설….

  • 동천년로 항장곡

    桐千年老 恒藏曲(동천년로 항장곡)–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천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간직하고梅一生寒 不賣香(매일생한 불매향)– 매화는 일생을 추워도 그 향을 팔지 않는다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치않으며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 가지는 백번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상촌 신흠 선생의 <野言> 저런 싯구를 등에 새기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 관련된 글: 산문집. 사막의 순례자. 테오도르 모노 정호승의 시 몇 수 노암…

  •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요즘 젊은 작가들의 관심사를 훑어 볼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만, 젊은 작가 모두가 이런 주제의 글을 쓰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젠더와 퀴어, 톡립 영화 등도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인간의 관심사는 아주 많으므로 작가들은 그런 다양성을 포용하고 독자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많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특히나 서이제의 ‘0%를 향하여’와 한정현의 ‘우리의 소원은 과학 소년’은 글을 끝까지 읽을…

  • 윤희에게 (10/10)

    추천합니다. 가까이 가면 항상 좋은 냄새가 났어 도입부에서는 이 작품의 소재와 주제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폭설이 내린 일본의 거리, 우체통, 이혼한 엄마, 그를 못 잊는 전 남편, 사진을 찍는 사춘기의 딸… 전반적으로 분위기는 무겁지만 그것이 무섭거나 우울하지는 않습니다. 눈이 지붕까지 쌓인 오타루의 거리가 사람을 푸근하게 해주고 사춘기 소년과 소녀의 입담과 분위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 25/100 음식혁명

    이 책의 저자는 존 로빈스. 유명한 아이스 크림 회사 ‘베스킨 로빈스 ‘의 유일한 상속자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환경운동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책의 제목 위에 붙어있는 설명 ‘육식과 채식에 관한 1,000가지 이해와 오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존 로빈스는 육식을 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삶과 환경을 근원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음을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설파하고 있다.닭과 돼지와 소는 태어나자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