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기우 (이영광)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우리가 맨발로 걷던
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
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
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
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
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
산지기 같은 얼굴로
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
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
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
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
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
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
나 혼자만 들어가본 곳이 있지요
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
웃다간 눈물 나던 비자림을 찾겠어요

* 제주도의 관광지. 비자나무숲.

『아픈 천국』(창비시선 318)
via. http://blog.changbi.com/lit/?p=10481&cat=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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