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요즘
이제 막 아빠가 되려는 요즘,
나를 아빠라고 아버지라고 부를 아들이 태어나려는 요즘,
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는 시가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김남주
내가 심고 가꾼 꽃나무는
아무리 아쉬워도
나 없이 그 어느 겨울을
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땅의 꽃은 해마다
제각기 모두 제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늘 찾은 별은
혹 그 언제인가
먼 은하계에서 영영 사라져
더는 누구도 찾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오늘밤처럼
서로 속삭일 것이다.
언제나 별이
내가 내켜 부른 노래는
어느 한 가슴에도
메아리의 먼 여운조차
남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삶의 노래가
왜 멎어야 하겠는가
이 세상에서..
무상이 있는 곳에
영원도 있어
희망이 있다.
나와 함께 모든 별이 꺼지고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내가 어찌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가.

참으로 지독한 삶이다.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질긴 것인지 예전엔 몰랐다.

지난 10년간 3번의 수술과 9차례의 응급 입원이 있는 내가 지금 가장 무섭고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다. 그 칠흙같은 죽음의 절망감이 나의 분주하고 번잡한 생을 덮쳐올 때마다 아쉽게 남아있는 미망의 일들은 내 가슴 속에서 더욱 끈적거렸다. 삶이 이토록 밝은 것이고 또한 이토록 큰 것인 줄을 예전엔 알 수가 없었다.

지난 해 아내가 내 청혼을 승낙했을 때 나는 내게 남겨질 아쉬움과 그 아쉬움에 동반하는 고통과 슬픔이 더 커지리란 것을 잘 알고있었으며 그럼에도 그녀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아니 그럼에 불구하고 그녀는 날 받아들였다. 이제 우리의 아들이 태어나면 그 그리움과 아쉬움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큰 커지고 넓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내가 청년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 해드리지 못했던, 언젠가 아들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는 그 날이 온다면, 나는 이 시를 찬찬히 읊어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들아, 너는 내가 가꾸고 키웠지만 너는 나와 함게 사라질 꽃나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제 철을 잊지 않는 꽃나무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노래가 그리고 너의 노래가 멈출 지라도 세상의 노래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내가 없더라도 너는 나의 가슴 속에 영원할 것이다. 그리하여 온전히 빛을 발하는 희망의 별이 될 것이다. 너도 너의 아들을 제 철을 잊지 않는 꽃나무로 키우거라.

ps. 이것이 내가 아들에게 쓰는 첫번째 편지이다.

나와 함께 모든 노래가 사라진다면

Similar Posts

  • 무더위

    At least 247 killed in earthquake in central Italy @CNNI http://cnn.it/2bfmM0O이탈리아에서 지진이 발생해 최소 247명이 죽었다고 한다.Via @NPR: Suicide Bombing At Turkish Wedding Pinned On ISIS https://n.pr/2bGnzJb터키의 한 결혼식에서는 IS가 어린이를 이용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57명이 죽었다고 한다. 한국은 근 한달 넘게 폭염이 계속 되고 있고 이는 기상청 기준으로는 1994년 이후 최고라고 한다.열대야 때문에…

  • 대관령 옛길. 김선우

    추위를 막기 위해 털어 넣은 독주가 눈물이 되어 툭 털어지는 대관령길. 우린 모두 길 위에 서 있다. ps. 운전면허를 따고 처음 대관령길을 내려가던 때가 생각난다. 이 길에서 한순간에 저기 먼 낭떠러지로 날아갈 수도 있겠구나.   관련된 글: 장밋빛 인생, 시인을 찾아서2 1/100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시. 기우 (이영광) 시. 패배는 나의 힘 –…

  • |

    26/100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오카 소이치 원작 ‘대망’을 요꼬야마 미쯔데루(바벨2세, 요술공주세리, 철인28호 등을 그렸다)가 만화로 옮겼다.좋은 만화다. 읽고 있노라면 일본 전국시대의 혼란과 암투, 음모와 지략, 배신, 정열과 의지 뭐 이런 거창한 느낌들이 생생히 전달되어 온다. 소설도 탐이 나지만, 읽다가 포기했다는 엄살을 너무 많이 들어서 쉽게 접근이 안된다. 관련된 글: 만화. 맛있는 관계. 사토루 모키무라 만화. 피바다 학생작품집 1 Akiko…

  • 혼란한 세상

    세계가 혼란하다. 뮌헨 쇼핑몰에서 총기 난사. 시리아 테러와 프랑스 테러. 이 와중에 누구는 꽃이 아름답다며, 또 누구는 사드 미사일과 이건희의 성매매에 대해 트윗한다. 난 마음이 어지럽고 편치 않아 어질어질하다. 관련된 글: 소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주5일 근무 시작~ 호암 미술관 가다. 입문! Racing skate! 비오는 7월 어느 날, 부석사에 다녀오다. "한국의 월드컵은 지겹다" PSP homebrew의…

  • 김남주 시인이 떠난 지 벌써 10주기가 되었군요…

    오늘 2월 13일이 김남주 시인이 떠난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랍니다. 그의 10주기를 추모하며 평전이 나왔습니다.김남주 평전/ 한얼 미디어/ 2004 늘 그랬습니다.김남주 시인을 읽을 때면 항상 얼굴이 붉어질 만큼 부끄러워 졌습니다.그 당당한 삶의 자세만큼이나 크낙한 그의 시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졌습니다.내 가는 길에 의문이 들어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언제나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던.시인이기 이전에 혁명가였던 그의,시퍼렇게 날 선…

  • (회사 내) '정치'에 관한 완벽한 정의

    탁월한 조직이 빠지기 쉬운 5가지 함정 탈출법 – 페트릭 렌시오니 지음, 이종민 옮김/다산북스 내가 기억하는 한 회사 내 정치에 관해서 이보다 완벽한 표현은 본 적이 없다. 탁월한 조직이 빠지기 쉬운 5가지 함정이라는 책을 보면 회사 내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정치란 해야 할 말과 행동을 선택할 때 자기가 실제로 생각하고 있는 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