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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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 오헨로

오헨로란 무엇인가

고보 대사와 순례의 기원

88개 사찰 이야기

오세타이 문화

걷는 사람들

왜 걷는가, 라는 질문

1,200킬로미터를 두 달 가까이 걸어야 하는 여정. 왜 가는가.

이 질문을 오헨로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던지면, 답이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 처음 출발할 때의 이유와 돌아올 때의 이유가 다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병든 몸으로 떠나는 사람

걷는 사람들

오헨로의 전통적인 순례자 유형 중 하나는 중병을 앓은 사람이다. 역사적으로도 시코쿠에는 병이 나은 것에 감사하거나, 낫기를 기원하며 길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도 암 진단을 받은 후, 혹은 큰 수술을 마치고 회복 과정에서 오헨로를 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린다.

몸이 성치 않은 상태에서 1,200킬로미터를 걷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쉽게 짐작하기 어렵다. 어떤 사람에게는 완주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냥 하루하루를 걷는 것, 아침에 일어나 다음 절을 향해 발을 내딛는 것 — 그것이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 됐다고.

무언가를 잃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직장을 잃은 후, 관계가 무너진 후 — 오헨로를 선택하는 계기는 대개 삶의 어떤 전환점과 맞닿아 있다.

일본의 한 다큐멘터리에서 취재한 순례자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30대 남성, 결혼 실패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처음 며칠은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걸었다. 다리가 아프고 물집이 생기고 비가 왔다. 그것에만 집중하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오헨로는 그에게 ‘머릿속을 비우는 방법’이었다.

은퇴 후의 여정

일본에서 오헨로 순례자의 상당수는 중장년층이다. 은퇴 후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는 방식으로 오헨로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수십 년간 회사에 다니다가 퇴직한 후, 처음으로 자기 시간을 갖게 된 사람들.

두 달의 시간이 생겼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오헨로가 그 답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걷고, 절에 들르고, 낯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밤에는 피곤해서 바로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 화려하지 않지만, 확실하게 충만한 하루.

외국인 순례자들

오헨로를 걷는 외국인 순례자의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오헨로를 찾는 경우도 있고, 일본 문화와 불교에 관심을 갖다가 오는 경우도 있다.

언어의 장벽이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오헨로의 경험을 다르게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오세타이를 받고, 몸짓으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절에서 기도를 올린다. 말 없이도 연결되는 순간들.

그냥 걷고 싶어서

가장 솔직한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이유도 없이, 그냥 걷고 싶어서. 도시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스마트폰과 이메일에서 두 달쯤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오헨로를 마친 사람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떠나기 전에 기대했던 것을 얻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을 얻는다.” 어떤 형태로 변화가 오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하지만 1,200킬로미터를 걸은 후 예전과 완전히 똑같은 사람으로 돌아간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순례자의 길, 오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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