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보 대사와 순례의 기원

고보 대사와 순례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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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 오헨로

오헨로란 무엇인가

고보 대사와 순례의 기원

구카이, 그는 누구였나

고보 대사와 순례의 기원

1탄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오헨로를 진짜 이해하려면 구카이(空海)라는 인물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가 없었다면 오헨로도 없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 구카이가 없었다면 일본 문화 전체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774년, 시코쿠 사누키 지방(지금의 가가와 현)에서 태어난 구카이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15세에 나라(奈良)로 상경해 유학을 공부하다가 이내 불교에 빠져들었다. 18세 무렵, 그는 궁정에서 출세가 보장된 관료의 길을 버리고 수행자의 삶을 택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결단이었다.

젊은 구카이가 수행을 위해 돌아다닌 곳이 바로 시코쿠다. 동굴 속에서, 깎아지른 절벽 앞에서, 거친 파도가 치는 해안에서 그는 명상하고 기도했다. 훗날 오헨로의 여러 사찰이 그 수행지에 세워진다. 순례자들이 걷는 길은 어떤 의미에서 1,200년 전 젊은 구카이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다.

당나라로, 그리고 돌아오다

구카이의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당나라 유학이다. 804년, 31세의 구카이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넌다. 당시 중국과 일본 사이의 항해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위험했다. 실제로 구카이가 탄 배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항로를 크게 벗어났다.

장안(지금의 시안)에 도착한 구카이는 청룡사에서 혜과(惠果)라는 노승을 만난다. 혜과는 밀교의 핵심을 전수할 후계자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은 드라마틱하다. 혜과는 구카이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소.” 구카이는 불과 수개월 만에 혜과로부터 밀교의 모든 것을 전수받는다. 이듬해 혜과는 세상을 떠났다.

806년 귀국한 구카이는 일본에 진언종(真言宗)을 세운다. 밀교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고야산(高野山)에 총본산 금강봉사를 창건했다. 일본 불교의 역사에서 굵직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전설이 된 사람

구카이는 835년 입적했다. 향년 62세. 그러나 일본인들은 지금도 그가 고야산에서 영원한 명상 중이라고 믿는다. 죽은 것이 아니라 선정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야산의 오쿠노인(奧之院)에는 지금도 매일 아침 식사와 저녁 식사가 올려진다. 구카이가 잠든 묘소 앞으로 수행승이 밥을 날라다 준다. 수백 년째.

순례를 마친 오헨로상들이 마지막으로 고야산을 찾는 이유가 여기 있다. 1,200킬로미터를 함께 걸어온 구카이 대사에게 “완주했습니다”라고 보고하러 가는 것이다.

오헨로의 탄생

그렇다면 오헨로 순례는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실 기록이 분명하지 않다. 구카이가 직접 88개 사찰을 순례했다는 설도 있고,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행적을 따라다닌 데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역사 기록에 오헨로가 명확히 등장하는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 즉 88개 사찰을 순서대로 도는 방식이 정착된 것은 에도 시대(17세기)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도로가 정비되고, 민간에 불교가 퍼지면서 순례도 대중화된 것이다.

순례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1번 사찰 료젠지(靈山寺)가 있는 도쿠시마 현 나루토시에는 지금도 해마다 수많은 순례자가 흰 옷을 입고 첫발을 내딛는다. 구카이 대사가 살던 시대로부터 1,200년이 흘렀지만, 길 위에서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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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헨로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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