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헨로를 꿈꾸며
순례자의 길, 오헨로
여기까지 와버렸다

오헨로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었다. 어디선가 ‘일본에 1,200킬로미터 순례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냥 궁금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구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됐고, 88개 사찰의 의미를 알게 됐고, 오세타이 문화에 감동받았고,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7편까지 써버렸다. 직접 가보지도 않은 길에 대해.
이상한 일이다.
나는 왜 이 길에 끌리는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1,200킬로미터를 걸을 자신이 없다. 두 달이라는 시간도, 체력도, 아직은 현실적인 조건이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 길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아마도 ‘걷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갈망 때문일 것이다. 매일 화면을 보고, 키보드를 치고, 무언가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 — 그냥 걷기만 하면 되는 시간에 대한 욕구.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다음 절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하루의 전부인 삶.
오세타이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모르는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밥을 건네는 세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꽤 다른 질감이다.
언젠가는

오헨로 시리즈를 쓰면서 여러 순례자들의 기록을 읽었다. 처음에는 종교적 의미나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가, 나중에는 그냥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아졌다. 병든 몸으로 절 계단을 오르는 사람, 은퇴 후 홀로 길을 나선 사람,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오세타이를 받고 눈물 흘린 외국인.
그들이 그 길에서 찾은 것이 무엇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직접 걸어보지 않았으니까.
언젠가는 가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각오 없이, 그냥 흰 옷 입고 지팡이 들고. 1번 절 앞에 서서 삿갓 쓰는 그날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리즈를 쓴 보람이 있다.
동행이인(同行二人). 혼자인 것 같지만, 늘 함께하는 존재가 있다는 말. 걷지 않아도, 그 말은 벌써 위로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