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정전 (10/10)
장국영 70주년을 기념하여 아비정전이 4K로 리마스터링 재개봉된다고 했다. 추억반 호기심반 아비정전을 다시 틀었다.

이 영화는 서로 어긋나는 외로움들이 부딪히는 이야기다. 그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좋다.
1990년, 왕가위의 두 번째 장편이자 크리스토퍼 도일과의 첫 협업작인 ‘아비정전’은 흔히 그의 첫 걸작으로 꼽힌다. 당대 홍콩의 스타들이 모두 등장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장국영은 나르시시즘과 무례함으로 가득한 바람둥이 역을 맡아, 외로운 매점 직원 장만옥과 시니컬하고 화려한 쇼걸 유가령을 유혹한다. 그를 움직이는 동력은 사랑이라기보다 순전한 권태에 가깝다. 유덕화는 장만옥을 묵묵히 지켜보는 경찰로, 장학우는 씁쓸하면서도 다정한 바보 같은 절친으로, 그리고 반베이는 아들의 진짜 어머니 이름을 숨긴 채 그를 붙잡아두는 늙은 알코올중독자 양어머니로 등장한다.

이들 모두의 사랑과 관계는 결말 없이 허공을 떠돌다 일방향으로 끝난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는 특별한 서사가 없니 텅 비어있다. 그 빈 공간과 여백을 이국적인 음악과 째깍거리는 시계소리, 빈 복도의 발소리, 빗 속의 와이퍼 등이 채운다. 카메라는 젊은 남녀를 따라기자만 생각만큼 부산스럽지 않다. 오히려 그들이 피우는 담배 연기를 따라 유유히 흘러간다.
상대를 향한 무모한 욕망에 비해 너무 느리게 흐른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시간은 덫이다. 또한 시간이 지나갈 때마다 청춘의 순간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시간은 일종의 저주라고 볼 수 있다.
몇 년 만에 다시 본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든 장면은 장국영과 유가령의 베드신이었다. 마주 보지 않는 둘의 얼굴이 숨소리가 느껴질만큼 가깝게 겹쳐지는데, 단지 얼굴만으로 이렇게 끈적이며 밀도 있는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 싶었다.
영화의 마지막, 미스터리한 시퀀스는 설명 없이 전혀 다른 시공간으로 도약한다. 좁은 아파트에서 손톱을 다듬고 머리를 빗는, 완전히 다른 청년(양조위)이 등장하며, 마치 ‘거친 밤’을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장국영도, 유덕화도, 장만옥도, 유가령도, 장학우도 그리고 이 우아한 낯선 남자도, 모두 왔다가 가버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