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모처럼 쉰다는 느낌이 드는 토요일이다. 5일을 쉬지 않고 근무하면 역시나 피곤한데, 그런 만큼 쉼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이겠다.
TV를 끄고 오래간만에 오디오를 켰다. FM이나 인터넷 라디오를 켤까 하다가 오랜만에 직접 곡을 골라보기로 했다.
역시 손이 가는 건 모짜르트. 심포니 5번 G마이너 안단테. 낯선 곡인데 모짜르트라는 것은 확실하게 알겠다. 극한까지 밀어올린 감정을 담고 있지만 결코 선을 넘어 지나치지 않는다. 지금처럼 우울하고 슬픈 감정이든 밝고 화려하고 장난기 넘치는 것이든 말이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은 좋은 음식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고, 거실에 가득찬 소리를 귀에 담고 있노라면 촛불과 샹들리에가 가득한 기다란 식탁 에서 쉼 없이 서빙되는 만찬 자리에 앉아 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매우 자주, 음악을 들으면 그렇게 된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기름진 오리구이가 연상될 때도 있고, 치즈와 연유가 들어간 딸기 셔벗이 떠오를 때도 있고, 언젠가 정식당에서 맛 보았던 도라지 구이 같은 정갈한 음식이 생각날 때도 있다.
TV나 영화와 달리 음악은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귀 하나로 좁혀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더 집중하게 되고 더 많은 해석을 하게 된다.
천상 롤랑 바르트주의자인 내게, 해석의 다양성이야말로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음악은 특히 클랙식이라 부르는 서양 고전음악은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콘텐츠이다. 반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국내 아이돌 그룹의 음악은 상업 자본주의의 신제품일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음악은 없어져도 괜찮다. 콘텐츠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의의가 있음은 부정하지 않겠으나 음악 시장 전체가 그것에 목을 매는 것만큼이나 우울한 일은 없다. 영속성, 발전, 울림, 재생산 등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다.
빰빰빠밤. 하는 소리를 듣고서 백이면 백 모두 다른 생각과 감정을 떠올리는 음악을 듣고 있다. 피아노 소리가 날 때는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손가락이 클로즈 업 되고, 첼로나 바이얼린을 연주자들이 짬짬이 악보를 넘기는 장면도 떠 오르고 차례를 기다리며 숨을 고르는 트럼펫 주자도 보인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가꿔주는 행복한 일이다.

Similar Posts

  • 책 구입하다

    1. 천변풍경/ 박태원/ 문학과 지성사/ 2005년 2. 쨍한 사랑 노래/ 박혜경, 이광호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05년 보기– 문지시선 300호 출간 기념본. 덤으로 시집과 똑같이 생긴 수첩(공책?)을 한권 더 준다.– 100호(1990)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200호(2001) ‘시야 너 아니냐’– 100호에서 200호까지는 11년이 걸렸는데, 200호에서 300호까지는 5년이 걸렸다. 시/시인은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 감동을 주는 시/시인은…

  • 2019년이 되었다.

    제목을 쓴 후, 깜박이는 커서를 지켜보다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팔짱을 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연도가 바뀌는 것은 나이가 한살 더 늘어난다는 뜻이며 그에 비례해서 남은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될 지, 생이 끝나고 나면 남는 후회나 안도는 무엇일지. 2018년에 꽤나 공들여 작성했던 리스트가 있다. 올해는 몇개라도 달성해 보겠다….

  • God, what i'm doing now!

    I am really really sorry, for my heart & soul & me!!! ps. to 용, 훈 : 내겐 아직도 올라야 할 언덕이 길다. 내리막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고. 관련된 글: 소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주5일 근무 시작~ 호암 미술관 가다. 입문! Racing skate! 비오는 7월 어느 날, 부석사에 다녀오다. 26/100 만화 도쿠가와 이에야스 RSS 부분 공개의…

  • 한복 맞추다.

    실은 한복을 맞추면서 불협화음이 좀 있었습니다. 잘 아는, 그리고 잘 만드는 한복집을 알고 있다는 신부님의 의견에 따라 좋다, 그리로 가자 라고 했는데. 문제 아닌 문제는, 신부님이 어머니와 큰언니를 동행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옷을 잘 골라주거나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거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저는 그런 소소한 이유로 두분을 귀찮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지요. 어째든 신부님, 급기야…

  • 민들레

    집에 들어가다가 눈에 밟힌 민들레.핸드폰으로 예쁘게 찍어줬다. 관련된 글: 소위와 중사, 누가 더 높을까? 참이슬이 최고인 이유 재회 “Never let your sense of morals get in the way of doing what’s right.” 타임즈가 뽑은 20세기 최고의 책 100선 Jiko Best, 오늘의 SF 걸작선 manfrotto 486rc2 + slik pro 340dx 둘째 아들을 위한 두번째 편지

  • call of duty 2 (9/10)

    근래에 손을 댄 FPS 중에서는 최고! 관련된 글: World of warcraft 유료화되다. 대항해 시대 온라인 Nintendo Game Boy – $25,000 1인칭 슈팅게임의 즐거움 PSP homebrew의 혁명, Devhook 0.43 라스트 오브 어스. 리마스터드 (Last of us. Remastered) 오늘의 명언 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