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 (Lamb, Dýrið, 2021) (7/10)

램 (Lamb, Dýrið, 2021) (7/10)

램 (Lamb, Dýrið, 2021) (7/10)

호러, 스릴러라는 장르 표기가 붙어 있지만, 막상 보고 나면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니다. 잔인하지도, 공포스럽지도, 무섭지도 않다. 그렇다고 딱히 다른 장르로 분류하기도 애매하다. 그냥 ‘램’이라는 영화다.

불과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 영화답게, 영화는 그 땅에 대한 사람들의 보편적인 상상을 충실히 보여준다. 춥고 차갑고 넓고 황량하고 거칠고 밤이 길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여유롭고 느긋하다. 영화도 그렇다. 대사가 많지 않고, 갈등도 거의 없고, 카메라 워킹도 부드럽고 느긋하다. 감독 발디마르 요한손의 조부모가 실제 아이슬란드 양 농부였다는 사실이 이 생생한 질감을 설명해준다.

흥미로운 건, 영화의 서사가 주는 느낌과 영상미가 정반대라는 점이다. 내용은 분명 기이하고 불안한데, 화면은 시종일관 차갑고 아름답고 고요하다. 빠른 컷이나 과장된 연출 대신, 정적인 구도 안에 불편함을 조용히 심어놓는 방식이다. 그 이질감이 오히려 영화를 더 묘하게 만든다.

‘램’은 실재하는가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아다’의 실존을 의심했다. 저 두 사람에게만 다른 무언가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설령 실제로 그런 존재가 태어났다 해도, 정말 아무렇지 않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영화가 던지는 알레고리와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존재, 서로 다른 세계에 대한 존중과 수용—어쩌면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평이하게 읽으면, ‘아다’를 받아들이려는 가족과 되찾으려는 가족 사이의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휴먼 드라마인가?

장르 따위 아무려면 어떨까

분류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민속 호러와 블랙 코미디, 아이슬란드 관계 드라마가 뒤섞였다는 평이 있지만, 그 어느 쪽으로도 딱 떨어지지 않는다. 특이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결말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누미 라파스의 묵직한 연기가 이 기묘한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어준다.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갈수록, 더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영화일 것 같다.

Similar Posts

  • Mr.로빈 꼬시기 (4/10)

    http://www.imdb.com/title/tt0928154 이 영화는 헐리우드 스타일을 체화하고 있는 감독과 이미 그것에 충분히 길들여진 관객을 위해, 의도하지 않았지만 헐리우드식으로 만들어진 영화다.‘사랑의 진정성’은 본질적으로는 중요한 논제이지만 영화는 (그것을 소재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위에 접근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재기 발랄한 연애담으로 변질시키고 있다.다니엘 헤니는 잘 생겼다, 좋은 배우는 아니다. 그런데도 영화의 기본 얼개가 그에게 맞춰져 있다. 관련된…

  • 무명 (Hidden Blade, 2023) (7/10)

    무명 (Hidden Blade, 2023) 양조위의 얼굴에 이끌려 시작한 영화였다. 그런데 막상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즈음, 머릿속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왕이보였다. 젊고 잘 생겼다. 그러나 양조위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다. 영상미만큼은 타협이 없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영상미다. 배우들의 얼굴을 따라 굴곡지는 섬세한 조명,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꽉 찬 구도. 꽉…

  • 뱅크잡 (5/10)

    http://www.imdb.com/title/tt0200465 짜임새가 허술하지 않음에도 재미가 없는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많은 탓이다.그나저나 이게 실화라는게 더 놀랍네. 관련된 글: 플라이트플랜(Flight plan) (7/10) Mr.로빈 꼬시기 (4/10) 거룩한 계보 (4/10) 블러드 다이아몬드 (blood diamond) (9/10) 허니와 클로버 (Hachimitsu to Clover) (2/10) 투건즈 (6/10) 베놈 2: 렛 데어 비 카니지 (6/10) 아웃레이지 비욘드 (9/10)

  • 배틀 인 시애틀 (9/10)

    http://www.imdb.com/title/tt0850253/ 한국에 이런 영화가 개봉되지 않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영화의 다양성, 문화의 개방성을 넘어서 WTO가 우리의 삶에 어떤 역할을 하는 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국가인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이 영화에 출연하는 몇몇 쟁쟁한 배우들의 이름은 기억할 만한다.미쉘 로드리게즈,마틴 헨더슨,우디 해럴슨,샤를리즈 테론, 레이 리요타 등등. 관련된 글: Felon (8/10) 스타쉽트루퍼스 3 (1/10) 화피, Painted Skin (6/10) 방콕 데인저러스 (2/10)…

  • 헌트 (2/10)

    이 작품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손도 대지 마세요. 관련된 글: 엘프 (6/10) 밤과 낮 – 홍상수 (9/10) 나의 아저씨 (9/10) 말모이 (8/10) 아미 오브 더 데드 (3/10) 투건즈 (6/10) 인생은 아름다워 (7/10)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

  • 스캔들 – 조선 남녀 상열지사 (8/10)

    통하였느냐?통하고 버렸느냐?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저는 육체의 신성함-고결하다거나 더럽혀진다 거나 하는-을 믿지 않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은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할 수 없는 사회,육체에 대한 억압이 이성에 대한 억압으로 이어지는 중세사회 조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발랄하기 그지 없는 상상의 나래. 장점이 많은 영화입니다.우연을 가장하여 도서관에서 사랑을 고백하고골목길에서 튀어나오는 치한을 폼 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