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자 —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최승자 —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최승자 —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2010년 인터뷰다. 처음 읽은 건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난 뒤였다. 슬펐고, 그 슬픔의 일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최승자 시인을 처음 만난 건 시집이 아니라 구절이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누가 써준 것처럼 느껴지는 문장이 있다. 그게 그랬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허무와 절망은 내 운명이었어요. 문학은 슬픔의 축적이지, 즐거움의 축적은 아니거든요.”

이왕이면 낙관을 선택할 수 있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게 답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선택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맞다.

가장 오래 머문 대목은 따로 있었다.

“우리 시대와 사회가 시인에게 상처를 준 것일까요?”
“그건 틀린 말입니다. 자기 삶을 사회나 남에게 전가할 수는 없어요. 나 혼자 겉돌았고 그런 공부를 했고 병원에 들어가 있었을 뿐입니다.”

저 말을 저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34kg의 몸으로 입원 중에 나와서, 자기 삶은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 비참하지 않았다. 단단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시를 계속 쓸 것이고, 밥만 잘 먹으면 돼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그래서 슬펐던 것 같다.

원문 인터뷰: 최보식, 조선일보, 2010.11.22 — 바로가기

Similar Posts

  • |

    8. 주말 여행의 모든 곳

    어머님의 칠순을 기념하여 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보게 됐다. 올컬러에 전국을 망라해 놓긴 했지만, 지역별로 보기 힘들어 실속이 떨어진다. 나중에 가보고 싶었던 곳과 도움이 되겠다 싶은 내용은 아래 메모에. 경상북도 청송 : 주왕산 국립공원, 주산지, 송소고택, 청송온천관광호텔, 솔기온천 통영 : 소매물도, 전혁림 미술관, 박경리 기념관, 주전부리 (엄마손 충무김밥, 풍화김밥, 오미사 굴빵, 꿀봉이, 할매우짜) , 카페 포지티브즈 통영,…

  • I touch the future…

    “I touch the future. I teach.”– Christa McAuliffe 관련된 글: 소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산문. 곽재구의 포구기행 산문. 2/100 광기와 우연의 역사. 스테판 츠바이크 시집. 10/100 쨍한 사랑 노래 29/100 체 게바라 자기계발. 38/100 리더쉽 바이러스 산문, 4/100 강의 12/100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

  • |

    47/100 메이드 바이 준초이

    최명준이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나는 모른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이들에게 그리 만족스러운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같은-최명준 고유의 사진 철학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그저 잘 찍은 상업사진 몇 컷이 삽화로 들어갔을 뿐이어서 그의 사진이 가진 감동이나 의미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더우기 이야기를 풍요롭게 해줄 일화들도 ‘한국에서 가장 비싼 사진값을 받고 일감을 받으면…

  • 장정일의 독서 일기

    나는 책 읽기에 대해 엄청난 의무감을 가지고 있고 늘상 부족하고 모자르다 생각하고 있다. 2006년에는 100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하고 그 해 연말에는 55권의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1년에 55권은 주에 한 권 정도 읽는 템포. 2006년에는 야후에 있던 때였고, 그 때 까지만 해도 나는 전 세계 인터넷 쇼핑의 표준이 될만한 상품 페이지를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책…

  • 시. 슬픈 빙하시대

    당신을 알았고, 먼지처럼 들이 마셨고산 색깔이 변했습니다. 기적입니다. 하지만 나는 산속에 없었기에 내게는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기적이 손짓해도, 목이 쉬게 외쳐도 나는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습니다. 가는 길도 잃어버렸습니다. 당신이 오랫동안 닦아 놓았을 그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이제 덤불로 가리워진 그 어디쯤, 길도 아닌 저 끝에서 당신은 오지 않는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요. 다시는 기다리지도 부르지도 않겠지요. 그…

  • 정호승의 시 몇 수

    사랑한다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 위에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몇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비가 그친 뒤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강물을 내려다본다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사랑한다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윤동주의 서시너의 어깨에 기대고 싶을 때너의 어깨에 기대어 마음놓고 울어보고 싶을 때너와 약속한 장소에 내가 먼저 도착해 창가에 앉았을 때그 창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