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보내며

친구를 보내며

나는 아주 많이 슬프다.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나서부터 계속 울었다. 책상 앞에 앉아 각티슈를 꺼내 머리를 숙여 울었고 출근 길 언덕을 내려가다가도 꺽꺽거리며 울었고 두번 절을 하면서는 미안하다고, 여름에 보고 더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다고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었다.

아마 그는 알았을 게다.

시집을 엮으려고 결심했을 때부터
나한테 시집이 나왔다고 말할 때에도
내게 ‘늘, 꼭, 건강합시다’라고 적은 시집을 건네 주었을 때에도
이렇게 먼저 떠나게 될 것이라는 걸 그는 알았을 게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음을 굳이 밝히지 않고 모른 척 했던 것처럼, 그도 모른 척 했겠지. 그런 면에서 우리는 서로를 잘 속여 넘겼다.

어제 아침에 부고를 받고나서도 하늘은 더 푸르렀고 나무들은 가을 준비에 여념이 없고 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선 사람들도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세상은 그에게도 그렇게 야속하게 굴었다.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지지는 않더라도 그저 좀 흐린 하늘이었어도 좋았을 것을. 세상은 그가 죽어도 그리고 내가 죽어도 그렇게 굳건하게 얼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변함 없을 테고, 그건 어쩔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섭리일텐데도 당사자는 야속하다 불만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그와 함께 한 20대를 돌아본다. 교지 편집위원회, 편집실, 충무로, 조판, 기획, 화염병과 쇠파이프, 두건, 연세대, 종로, 동대문, 신촌, 광주, 군산, 소주, 막걸리, 88, 달리기, 글, 책, 시, 음악, 영화, 전대협, 전노협, 전교조, 파업전야, 청평사, 안면도, 회의, 세미나, 교수님, 춘천, 결혼식…

그가 떠나면서 그와 함께한 나의 20대도 떠나가고 스러져가고 있다.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떠나기만을 기다리던 시간들이 이때다 싶게 모래 수렁에 빠져 흔적도 없이 소멸하고 있다. 죽음의 진공이 풀리며 찬란하게 압축된 그 많은 시간과 기억과 추억이 모두 무한의 검은 망각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영정 사진 속에 넉넉하게 미소짓는 그의 얼굴은 평온해보였지만, 그래서 더 현실감이 없었다. 언제나 느긋하고 언제나 유쾌하고 언제나 똑똑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런 기억은 이제 얼마나 갈까?

“그래, 오래 전에 내가 대학 다닐 때 함께 화염병과 짱돌을 던지던 친구가 있었지. 시를 좋아했고 시를 썼고 그러다가 회사를 들어가 임원까지 달고는 어느 날 시집을 냈던 친구가 있었지”

이런 공허하고 가치 없는 단어들로 그를 남기고 싶지 않지만, 이제 다른 방법이 없다. 단어와 문장이 텅텅 비어 연기가 됐다 바람 불면 흩어지고 손으로 쥘 수도 없고 저기 있나 싶다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안개, 연기, 숨 같은.

나는 지금 슬프다. 아마 내일도 슬플 것이다. 모레도 슬플 것이다. 한동안 그를 생각하면서 슬프겠지. 그러다가 언제쯤이면 슬프지 않은 날들이 생기고 그런 날들이 슬픔을 뒤덮고 천천히 일상으로 되돌아가겠지. 가끔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과거를 짜맞추기도 할테고.

그게 인생이고 덧없는 삶의 종말이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이고 압도적으로 힘겹다. 지금이라도 전화가 걸려와 ‘잘 지내냐’라고 물어올 것 같다.

잘가라. 내 친구.

친구를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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