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기행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천등산(天燈山)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와 그 제자 능인이 창건했다고 전해짐. 절 이름의 유래로 두 가지 설이 전해지는데, 지세가 봉황이 머무는 형상이라는 설과, 의상이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날렸더니 이곳에 내려앉아 절을 지었다는 설
극락전(국보 제15호) — 상량문 발견으로 12~13세기 초 건립이 확인된,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대웅전(국보 제311호) — 1363년경 중수된 조선 전기 다포계 건물, 내부에 영산회상 벽화(보물) 보유
임진왜란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아 고려·조선의 건물이 나란히 보존된 귀중한 사례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등재
봉황이 머문 절. 능인스님이 천등산에서 수행하던 시절,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지금 절이 있는 자리에 내려앉았다고 한다. 그 전설에서 봉정사라는 이름이 비롯됐다.
봉정사는 서른 몇 살 즈음에 왔던 것 같다. 누구와 왔는지, 어느 계절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안동 봉정사’라는 이름 하나만은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소나무 숲길, 그리고 만세루
주차장에서 사찰 입구까지 이어지는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좋았다. 경사가 있어서 더 천천히, 더 차분하게 올라갔다. 숲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넓다란 만세루다.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려, 경사에 맞게 기둥의 높낮이를 조절한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만세루 앞 돌계단에 앉아 사진을 한 장 찍어보았다. 3분의 1은 만세루, 3분의 1은 하늘이 나오게. 마음에 드는 구도였다. 다른 이들도 같은 구도를 찾는지, 어떤 때는 짧고 즐거운 대기줄이 생기기도 했다.
사진 찍는 사람들을 피해 언덕길로 돌아드니 만세루 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쉬고 있었다. 보통 절로 진입하는 이런 누각은 출입금지인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탁 트인 전경을 누리는 모습을 보니 무엇보다 반가웠다.
극락전 — 천 년 앞에서
만세루 앞에는 봉정사의 상징인 극락전이 있다. 현존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이다. 비슷한 연배로는 부석사 무량수전이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량수전이 한국 최고(最古)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었다. 극락전은 상량문 기록과 건축양식 등을 종합해 1200년대 초로 추정되며, 무량수전은 고려시대(13세기)에 중수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대수일까. 천 년 가까운 역사 앞에서 겨우 60년을 사는 인간은 그저 스쳐 지날 뿐이다.
극락전에 들어가 아미타여래를 향해 삼배를 올렸다. 잠시 앉아 불상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그조차 기억할 필요 없는 고요함과 정숙함이 그 안에 있었다. 극락전은 고려 후반의 건축양식을 따른다. 배흘림 기둥, 지붕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만 짜임새를 얹은 주심포 양식이다.
극락전 앞에는 철 이른 코스모스가 가득했고, 사찰 여기저기에 소박하게 꾸며진 꽃밭이 있었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꽃밭이 정겹기 그지없었다.
고려의 극락전, 조선의 대웅전
극락전 바로 옆에는 조선 초기에 지어진 대웅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고려의 극락전과 조선의 대웅전이 한 공간에 있어, 두 시대의 건축 양식을 자연스럽게 비교해볼 수 있다. 대웅전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짜 넣은 다포 양식인데, 이것이 극락전보다 훨씬 화려하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이제 만세루에 올라가 앉아본다. 누각 위로 하늘과 숲, 탁 트인 전경에 절로 가슴이 열렸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녹색 우거진 봄, 울창한 수풀과 소나기가 있는 여름, 온갖 색으로 물드는 가을 산, 그리고 하얀 눈이 덮여 수묵화를 떠오르게 만들 겨울 산까지.
왜 이렇게 계속 아픈지, 그리고 힘들고 괴로운지. 시원한 바람과 시원한 풍경에 빠져 있다 보니, 그런 우울함은 먼지처럼 털어내야 할 쓸모없고 하찮은 걱정들처럼 느껴졌다. 명상도 참선도 아니지만, 허리를 펴고 정좌한 채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 옆에 스님이 털썩 자리를 잡으셨다. 어정쩡하게 반배를 올리니 “안녕하십니까” 하며 반배로 받아주셨다. 반가움과 함께 여유가 느껴지는 그 맑은 목소리에, 다시 한번 마음이 깨었다.

가을에, 눈 내리는 겨울에 다시 와야겠다.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