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신화와 왜소한 인간의 사이에서 – 오딧세이 (10/10)
블로그에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가 없다. 그의 작품들-메멘토, 다크아니트트릴로지, 인셉션, 인터스텔라, 오펜하이머 등-은 하나같이 인상 깊었고 매우 높은 평점을 줬는데, 어째서 남아있는 평이 하나도 없는지 모르겠다. 이건 또 이것대로 당황스럽다.
이 작품은 제작 과정 자체가 큰 화제였다. (놀란이 종종 활용했던) IMAX를 전 장면에 도입했고, 막대한 예산으로 주연급 배우들을 온갖 조연에 배치하고 CG 대신 그리스와 이탈리아, 모로코 등을 오가는 오지 촬영을 도입했다. 화제가 된 이유는 단순하다. 최근의 영화들은 이런 식으로 촬영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영화의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소위 대작이라는 작품들은 언제나 이랬다. 촬영 자체에, 무수한 엑스트라에, 스타급 배우들에, 놀라운 음악에 막대한 돈이 들어갔었다.
그러나 오딧세이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조금씩 다르다. 현대 서사 영화의 정점이라는 극찬부터 부분의 합이 전체에 이르지 못한다는 아쉬움, 전반적으로 어둡고 단조로운 색감에 실패한 완급조절 덕에 지루하다는 인상까지 말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그리고 미덕은 영화를 판타지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피비린내 나는 전투보다는 인간의 내면과 갈등을 내세웠고 그 안에서 서사는 문명과 회생, 회복력, 죄와 벌, 용서와 속죄 같은 철학적 주제를 파고든다. 놀란 감독의 장점이고 오딧세이는 그의 장점이 거의 최고조로 발휘되었다.
좋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이유다.
맷 데이먼의 오디세우스는,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이 그랬던 것처럼, 영웅이기보다는 인간이고 또한 사색적이다. 끊임 없이 고뇌하고 좌절하고 선택해야하는 인간,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매우 크다.

이토록 뛰어난 영웅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것과 다르지 않다. 배트맨도 오디세우스도 망설이고 고뇌하고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어한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어서 앞으로 나가지 않는가? 힘들더라도 일어서고 살아보자.
제우스의 법, 낯선 이와 나그네를 환대해야 하는 불문율.
영화는 오디세우스가 겪는 시련의 뿌리를 트로이 목마에서 찾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 계략은 동시에 환대의 법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배신이었고, 오디세우스도 그를 벌하는 신들도 그 사실을 안다.
우리는 더이상 히치 하이킹을 하지 않고, 우리 집에 낯선 이를 들이지 않는다. 아이들은 누군가 선의를 배풀면 그 진의를 의심하라고 배운다.
아마 이런 불신과 악의와 배신이야말로 인간 오디세우스가 신벌을 받는 가장 근원적인 이유이고 놀란 감독은 선의가 사라진 사회에 이 메세지를 던지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타카의 페넬로페, 폭력적인 남자를 대신하는 부드러운 권위

“남자는 원하는 대로 한다”는 페넬로페의 대사는 제우스의 법과 함께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큰 축이다.
남자들은 떠나고, 싸우고, 영광을 좇으며 운명을 개척하지만, 여자는 남겨져 견뎌야 한다. 그러나 놀란의 페넬로페는 남편을 기다리기만 하는 장식적 존재가 아니다. 남자들이 트로이에서 영광을 좇는 동안 왕국의 질서를 지키고 구혼자들을 상대해 온 정치적 주체다. 이 나라에 왕이 없었다는 아들의 말에 자신이 실제로 통치해 왔다고 맞서는 장면은 권위와 성별, 정통성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이다. 다만, 이타카의 여러 장면들은 비슷비슷한 플롯과 서사로 확실히 긴장감이 떨어졌고 그로 인해 놀란의 메세지도 금새 휘발된 것은 사실이다.
오디세우스의 시련, 이 장면들은 놀란 감독의 기술적 성취를 남김 없이 보여주었다.

외눈박이 거인, 거인족, 세이렌, 마녀 키르케 등 각각의 에피소드는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그 하나의 에피소드가 매우 완성도 높은 단편 영화처럼 느껴진다. 특히 가장 놀라운 것은 사운드. 괴물의 으르렁거림부터 사람들의 비명,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 등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쌓아올려 무언가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긴장감, 공포와 두려움을 극대화했다. 마치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듯한 각종 음향과 음악은 귀를 막는 것으로는 막을 수도 없었다.
회상으로 시작되어 반복되는 컷들 덕분에 초반은 1/3은 좀 지루했다. 대 숏츠의 시대에 ‘사람들은 과연 이 이야기를 알아줄까?’를 우려한 탓이었으려나? 너무 자세히 설명하고 알려주려 애쓰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 또한 짧은 영상에 익숙한 탓일 수도 있겠다.
맷 데이먼의 연기는 만점이었다. 끈기와 희망으로 버티는 지친 왕을 절제된 연기로 설득력 있게 그려 내며, 신파로 흐르지 않고 내면의 혼란을 드러낸다. 커리어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앤 해서웨이의 페넬로페 역시 좋았다 고집이 아닌 결연함, 조용한 품위와 강철 같은 의지, 그리고 미세한 표정 변화로 그리움과 외로움을 전하며 영화의 감정적 중심을 잡는다. 특히 자연스럽고 멋지게 나이를 먹고 있어 앞으로의 기대가 더 크기도 하다.
톰 홀랜드와 로버트 패틴슨은 애매하다. 톰 홀랜드는 텔레마코스 역을 맡기에는 다소 나이 들어 보였는데 불확실한 상속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미숙함 등을 표현하기에는 조금 어색했다. 패틴슨의 안티노오스는 많이 아쉽다.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젠데이아의 아테나는 짧은 분량에도 위엄 있고 신비로운 존재감을 남겨준다. 듄에서 인상 깊었는데 역시 좋은 배우였다.

샤를리즈 테론의 칼립소는 매혹적이면서 위험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저런 연기도 가능했네? 하는 놀라움.
존 레귀자모는 ‘로미오+쥴리엣’에 등장했을 때부터 좋아했던 배우.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 같은 이미지였는데, 이제는 따뜻하고 충직한 하인이 더 어울린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