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기

  • 모처럼의 새벽

    아마도 ‘하아’ 소리를 낸 것 같습니다.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았는데 안도인지 놀람인지 모를 큰 숨에 잠이 깼습니다. 5시가 조금 안된 시간, 여명이라기엔 날이 이미 매우 밝습니다. 자전거를 탈까 싶었지만 가뜩이나 칼로리가 부족한 상황이라 공복 유산소는 아무래도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머리 맡의 스마트폰을 켜고 스포티파이에서 early morning을 검색합니다. 시끄럽지 않을만한 플레이 리스트를 골라 음악으로 방을 채우고 침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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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형님께

    S형 오늘은 다시 출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지금 저한테 꼭 필요한 일인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아프기 전의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막상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무엇인가가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액상의 물이 딱딱한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녹아 물이되는 것과 비슷할텐데요, (만약에…

  • 다시, 일상으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왔습니다. 2021년 9월 17일, 정기 추적검사 결과 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았고 2021년 11월 8일 위암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위장마저 모두 제거되어 이제 저는 위가 없습니다. 좋은 점은 위염이 걸리거나 위가 쓰릴 일이 없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배고픔이나 배부름을 잘 느끼지 못하고 소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배탈이…

  • 암 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조언

    저는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세번의 암을 치료하며 경험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위로, 도움이 됐던 일들을 중심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아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지원 일상적인 작업을 돕습니다 약속 장소까지 운전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소통자 역할 개인 관리 지원 충격에서 먼저 벗어나세요 암 진단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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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의 위안

    마르셀은 가끔 원인을 알 수 없는 극심한 불안에 휩싸여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곤 했습니다. 그는 마르셀의 고민이 어쩌면 존재론적 고민일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마르셀은 차라리 정신적인 통증이 있어 약물로 치유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습니다. 마르셀은 자전거를 타면 마음을 무겁고 어둡게 만드는 끈적한 호흡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뒤로 풍경이 지나가면서 그 침침한 끈적함들도 떨어져 나가…

  • 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위한 조언

    암 진단을 받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아마 당신은 당신은 극심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상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렵고 화나고 슬프고 무섭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기복은 지극히 당연한 상태이며 그것에 초월하여 평온함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세번이나 경험을 했지만 점점 더 혼란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보통 다섯 단계를 거쳐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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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지 못하는 당신께

    매일 밤 뒤척거리며 잠을 이루지 못해 결국은 방불을 켜고 침대에 양반다리로 앉고 마는 당신의 모습을 새벽마다 지켜보고 있습니다.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릴 때도 있고, 음악을 듣다가 먼 과거로 빠져들기도 하고, 가끔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세어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당신의 불면증은 외로움에서 비롯되는 것 같아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 지 확실하지 않은데 이렇게 회복하지 못한…

  • 입원 준비물

    암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일주일 길게는 몇달까지 입원을 해야 합니다. 집에서 사용하던 일용품을 모두 가져갈 수는 없지만 입원하는 첫날부터 필요한 물품들도 있어 미리 준비하면 집을 왔다갔다 하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습니다. 수술을 하고 나면 사실 환자는 세수를 할 여력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만, 보호자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세수는 물론 머리도 감고 때에 따라 기본적인 화장도…

  • 배부른 사자처럼

    요즘 산책을 할 때는 음악 대신 오디오북을 듣는다. 명상에 관한 책이다. 쿤달리니, 차크라, 경혈, 우주, 햇빛 같은 단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중 그래도 선명하게 이미지로 그려낼 수 있는 문장이 있었다. 배부른 사자처럼 느긋하게 숨 쉬세요. 미래를 걱정하는 생물은 사람 밖에 없다고 한다. 동물들은 그저 지금, 지금 살아 남는 것에 집중할 뿐이다. 그러니 배부른 사자는 얼마나 느긋하겠는가….

  • 두달 후

    세번째의 암 수술을 마치고 두달이 지났다. 2기A의 위암을 제거하고, 남아있던 위를 모두 절제하는 수술이었다. 아직도 먹는 일은 버겁다. 위가 없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소화하는 게 쉽지 않고 먹는 양이 줄으니 체중이 줄고 기력이 없는 상태이다. 물론 두달 전과 비교한다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도 조금 더 다양해졌고 산책도 한시간 정도 다닐 수 있지만 정상인에 비하면 턱없이…

  • 마음의 평화를 구하다

    참으로 진지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니체. 시지프스의 신화 위를 모두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고 점차 회복하는 중이지만, 곧 다가올 항암 치료 혹은 재발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어지럽고 괴롭다.니체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존의 질문을…

  • 입원 전 날 (11/7)

    어머니와 아이들, 다같이 호수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민준이와 예준이가 장난 끝에 싸웠다. 입원 안내 문자를 받고 다들 마음이 급해졌다. 네시간 남았다.좀 이르지만 점심을 먹기로 했다갠지스라는 인도음식점을 찾았으나 전화를 받지 않는다. 몇 번인가 맛있는 외식을 했던 ‘서울 감자탕’에 가기로 했다. 나를 포함해서 모두들 맛있게 먹었다. 아쉬움이나 답답답, 우울함이 잠깐이지만 사라졌다. 입 안의 즐거움이 다른 모든 감정을 이겨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