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차이나타운, 두 번의 발걸음
|

인천 차이나타운, 두 번의 발걸음

2주 연속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았다. 처음엔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첫 주엔 비가 내렸고 두 번째 주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날씨만큼은 내 계획을 잘도 비껴갔지만, 그래서인지 오히려 두 번의 방문이 각자의 색깔을 갖게 됐다.


첫 번째 방문 — 네 식구의 마지막 방학 외식

첫 주는 오랜만에 네 식구가 함께한 날이었다. 두 아들 모두 개학을 코앞에 둔 마지막 휴일, 모처럼의 외식이었다.

유니짜장으로 유명하다는 신승반점을 목적지로 잡았지만, 도착해 보니 이미 대기가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AI가 추천해 준 세 번째 후보, 태화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태화원은 인천천주교구 해안성당 옆에 자리하고 있었고, 식당 앞에는 넉넉한 주차장도 마련돼 있었다. 각자 한 그릇씩 고르고 찹쌀 탕수육도 함께 시켰다.

이 집의 메뉴판에서 눈이 멈췄다. 짜장면 종류만 무려 일곱 가지 — 짜장, 유니짜장, 삼선짜장, 향토짜장, 볶음짜장, 간짜장, 그리고 백짜장. 다들 백짜장이 궁금하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대신 둘째가 특이하게도 향토짜장을 골랐다.

향토짜장은 화학 조미료가 없던 시절의 재래식 방식을 재현한 짜장면이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먹는 검은 춘장이 아니라, 대두를 발효시킨 옛날 방식의 장을 사용한다고. 소스는 걸쭉하지 않고 자작했으며, 단맛은 없는 대신 고소하고 짭조름한 콩 맛이 묵직하게 올라왔다. 비주얼도 맛도, 익숙한 짜장면과는 꽤 달랐다.

백짜장은 그 향토짜장의 변주로, 춘장을 전혀 쓰지 않고 콩 본연의 색을 그대로 살린 것이라 한다. 다음엔 꼭 도전해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메모해뒀다.

태화원의 짜장면은 기대 이상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짜장면 특유의 감칠맛을 정직하게 끌어냈다. 가족 모두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두 번째 방문 — 카메라를 들고

두 번째 방문은 사실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창밖으로 쨍한 햇살이 쏟아지는 걸 보고 있자니, 새로 산 카메라를 테스트하기엔 딱이다 싶었다. 지난주에 걸었던 화려한 거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승반점을 기웃거렸지만, 이번엔 아예 마감이 된 상태였다. 두 번을 연속으로 실패하고 나니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언젠가 반드시 먹고 말겠다.

인천 차이나타운, 두 번의 발걸음

이번엔 공화춘으로 향했다. 100년의 전통을 이어온 곳이니 코스 요리를 경험해보기로 했다. 사품냉채, 삼슬삭스핀, 어향관자, 탕수육, 칠리중새우, 고추잡채와 꽃빵, 그리고 식사와 후식으로 이어지는 구성이었다.

첫 순서인 사품냉채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아내와 나는 동시에 “맛있다”를 내뱉었다. 백 년을 이어온 음식점의 맛이란 이런 것인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 마치 정답 같은 맛이었다. 접시마다 그런 균형이 담겨 있었다. 다음엔 어머님까지 모시고 다 함께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군자는 음식을 먹을 때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맛있는 음식이 주는 만족감은 범인(凡人)들에게는 꽤 크다.

점심을 마치고는 자유공원, 동화마을, 짜장면 박물관, 개항 거리 등을 천천히 걸었다. 십수 년 전에 한 번 왔던 것 같은데, 기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삶이란 결국, 어떤 시간을 쌓아가느냐의 차이가 아닐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겠지만, 작은 기쁨들이 모여야 생의 무지개도 그려지는 법이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 두 번의 차이나타운은 충분히 그런 시간이었다.

Similar Posts

  • 향일암 (전라남도 여수시)

    사찰기행 인생에 한 번은 꼭, 사찰 가이드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 5대 적멸보궁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 – 조계종 25교구 본사 용덕사 (용인시 처인구) 용주사 (경기도 화성군) – 조계종 3교구 본사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조계종 8교구 본사 구인사 (충청북도 단양군) 은성사 (경기도 용인시) 마곡사 (충청남도 공주시) 조계종 6교구 본사…

  • |

    links : 매그넘 (Magnum)

    world greatest photographic co-operative인 magnum에 관한 link와 자료를 정리해둔다.1. Official web site : http://www.magnumphotos.com/2. DCinside의 설명 : 매그넘(Magnum)3. 이름의 기원 :매그넘 창립 당시, 창립자들은 에이전시의 이름을 왜 매그넘이라고 명명했는지를 기록물로 남겨 놓지 않았음. 다만, 그들은 매그넘의 창립 정신 등과 함께 에이전시명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토론을 한것으로 추측되며 대담하고 새로운 도전의 의미로써 매그넘이란 이름이 적합하다고 동의한…

  • 법주사 (충청북도 보은군) – 조계종 5교구 본사

    This entry is 31의 32 in the series 사찰기행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俗離山) 신라 진흥왕 14년(553년) 의신조사가 창건, 조계종 제5교구 본사 현존하는 유일의 목탑 팔상전(국보)과 쌍사자 석등(국보)이 있는 호서제일가람. 모처럼의 연휴, 서울/경기/충청권에 남은 마지막 교구사찰 법주사로 향했다. 정이품송을 지나 속리산대법주사 현판 아래 들어서니 이미 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다.

  • 4박 6일의 짧은 혹은 긴 여행을 …

    4박 6일의 짧은 혹은 긴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 두살짜리 민준이에겐 다소 힘들었던 여행이고 예준이에게는 아주 재미있었던 여행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간 것도 나름 의미있다. 다만, 어머니께는 조금 지루했던 것이 아쉽다. 열심히 살아서 이런 시간을 많이 만들어야 겠다. 관련된 글: 2004.4 제주도 가족여행 무창포 괌 여행 참고 프렌즈 후쿠오카 2023년 6월 10일~ 12일, 울산-부산 숙소 주변…

  • 통도사 (경상남도 양산시) 조계종 제15 교구본사, 불보사찰

    사찰기행 인생에 한 번은 꼭, 사찰 가이드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 5대 적멸보궁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 – 조계종 25교구 본사 용덕사 (용인시 처인구) 용주사 (경기도 화성군) – 조계종 3교구 본사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조계종 8교구 본사 구인사 (충청북도 단양군) 은성사 (경기도 용인시) 마곡사 (충청남도 공주시) 조계종 6교구 본사…

  • 강릉 여행

    복직을 앞두고 식구들과 강릉을 다녀 왔습니다. 강문해변 그간 강문해변은 커피를 한잔 마시기 위해 들렀던 곳이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꽤 괜찮은 해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곳곳에 특색있는 가게들도 많이 생겼고 무엇보다 바다와 주위 풍경에 생기가 더 넘쳤습니다. 대관령 치유의 숲 대관령에는 여러 개의 숲길이 있는데 이번에 다녀온 것은 치유의 숲이었습니다. 첫 방문으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아 몇가지 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