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강화길

다른 사람. 강화길

다른 사람. 강화길

“영 페미의 최전선”

자극적이지만 작품을 평가절하하는 띠지였다. 저 문구는 이 책을 읽을지 말지 망설이게 만든다. 보통 화제가 되는 무언가에 기대는 작품들은 스스로 품질 불량임을 입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뛰어난 작품에 어울리지 않아서 저 저급한 띠지(애초에 띠지는 없어져야 할 장식이기도 하고)는 매우 아쉽다. 차라리 그녀의 인터뷰 기사 제목 “말하지 못할 뿐, 너무 흔한 일”정도였으면 어떨까 싶다.

아직도 시대와 사회에 만연한 성추행과 성폭행, 데이트폭력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고 피해자의 상처에 흐르는 자극에만 몰려드는 추악한 호기심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지만, 이 작품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확대 해석하고 싶다.

유리를 버린 진아와 진아를 버린 수진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이고, ‘이게 끝이 아닐거야’라는 소리를 듣는 진아와 ‘이게 끝이 아닐거야’라고 말하는 진아는 같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이다.

즉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특히나 가족의 범주를 벗어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권력의 위계 질서 안에 놓이게 된다. 특히나 푸코가 주목했던 미시 권력의 관계 – 선생님과 학생, 경비원과 주민, 의사와 환자 등-에서도 힘의 불균형은 발생하고 명시적으로 정의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권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그것에 굴종해야 한다.

강화길 작가는 아마도, 남성과 여성의 젠더 차이에서 (있어서는 안되지만 여기저기서) 발발하는 권력 구조와 그 폐해에 집중하는 듯 보이고 사실 그것이 페미니즘의 본질이기는 하다.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할 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지, 그것이 문제다.

Similar Posts

  • 아, 입이 없는 것들. 이성복: 명불허전 이성복

    남해금산은 어떻게 변했을까…궁금해 하며열어본 이성복의 새 시집은명.불.허.전이었다. 아, 역시 시는 고통스러운 장르야. 라는 오래된 기억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절제와 상징.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에까지 차고 넘치는 의미, 의미, 의미들.그 풍요로운 생각의 넘침이 날 흡족하게 만든다.‘토사물도 물기가 빠지면 추하지 않’은 것처럼 비루하고 남루한 삶도 견딜만 하다고 위로해 주는 시인의 속삭임이 너무 따뜻한 것이다. 24좀처럼 달이 뜨지…

  • 44/100 질문 리더쉽

    좋은 질문이 좋은 대답보다 낫다. 리더는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이 명제는 모든 사람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20세기 미국을 경악시켰던 3가지 사건인 타이타닉 호의 침몰과 챌린저 호 폭발, 피그만 침공 실패에는 충격적인 공통점이 있다. 관계자 중에 사건이 일어날 위험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은 것일까? 피그만 침공이…

  • 섀클턴의 리더쉽

    1. 궁극적인 목표를 잊지말라. 그리고 단기적 목표달성에 총력을 기울여라.2. 가시적이고 오래 기억에 남는 상징과 행동으로 솔선수범하라.3. 낙천적 마인드와 자기확신을 가져라. 단, 현실적 기반위에서4. 자신을 돌보라. 스태미나를 유지하고 죄책감에서 벗어나라.5. 팀 메시지를 끊임없이 강화하라 : “우리는 하나다. 살아다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다”6. 이질감을 최소화하고 서로에 대해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라7. 갈등을 극복하라. 분노를 억제하고, 다른 의견도…

  •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현대 과학의 주요 이슈들을 어렵지 않게 잘 설명해주는,killing time용으로 딱 적합하고, 청소년들이 보면 좋을만한 책이다. 우문 하나. 뉴톤 물리학이 무너지던 그 순간 이후부터, 우리의 삶은 더욱 힘들어지는 거 아닌가?정해진건 아무 것도 없고, 다만 확률로 존재할 뿐인 세상. 관련된 글: 산문. 3/100 당신들의 대한민국 2. 박노자 소설. 6/100 아름다운 아이.이시다 이라 육아. 14/100 좋은 아빠로 살아보기…

  • 시. 기우 (이영광)

    먼 훗날 당신이 아파지면우리가 맨발로 걷던비자림*을 생각하겠어요제주도 보리밥에 깜짝 놀란당신이 느닷없이 사색이 되어수풀 속에 들어가 엉덩이를 내리면,나는 그 길섶 지키고 서서산지기 같은 얼굴로오가는 사람들을 노려봤지요비자림이 당신 냄샐 감춰주는 동안나는 당신이, 마음보다 더 깊은몸속의 어둠 몸속의 늪 몸속의 내실(內室)에날 들여 세워두었다 생각했지요당신 속에는, 맨발로 함께 거닐어도나 혼자만 들어가본 곳이 있지요나 혼자선 나올 수 없는 곳이 있지요먼…

  • |

    축. 강희진兄의 세계문학상 수상

    유령 – 강희진 지음/은행나무 출근 길에 좋은 소식을 하나 들었다.내 학창 시절을 함께 지낸 兄의 문학상 수상 소식. 형은 늘상 담배를 손에서 떼지 못했던 사람이었고 진지한 사람이었고 장례식장에서도 뭔가 생각이 나면 메모를 하는 열의가 있었고 뚝심이 있는 사람이었다.가끔은 형의 원고를 타이핑하기도 했고 교정을 보기도 했었고 내러티브나 상징이나 표현에 관한 의견을 전하기도 했었다. 형의 어떤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