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원

입원 수속을 밟고 병동으로 이동, 한강이 내려다 뵈는 병실에서 환의로 갈아입었다.

곧이어 회의실로 가 기본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병동 시설에 대해 안내받았다.
샤워실, 화장실, 오물실, 다용도실 등등.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 낯익음이 외려 씁쓸했다.

또 왔구나.

팔에 링거를 맞았다. 간호사는 이리저리 혈관을 찾다가 결국 실패했고 곧이어 다른 간호사가 왔다.
노련해보이는 그녀에게도 쉽지 않은 듯, 한참을 고민 끝에 결국 손등에 링거를 꽂았다.
예전에 좋았던 혈관들이 15년 전에 항암 주사를 맞느라 모두 어딘가로 숨어버렸다.

나처럼, 혈관도 아픈 게 싫은가 보다.

또, 시작이구나.

오후에 주치의 김병식 선생이 회진을 왔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담당 레지던트인 김지연 선생이 수술 동의서를 받을 예정이라 알려줬다. 김지연선생은 앳된 얼굴에 마른 체형이어서  신경질적인 인상이다.

잠시 낮잠을 자고 제모를 했다. 면도 대신 제모크림을 바르고 20분 후 샤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제모크림은 생전 처음 발라봤는데 냄새가 매우 역하고 신기하게도 털이 모두 잘려나갔다.
밤 10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김지연선생은 오지 않는다. 간호사 말로는 12시가 될지도 모른다 했다.

회사로 비유하자면 밀린 보고서와 회의로 야근을 하는 것과 바슷하려나? 그러면 그녀는 대기업의 중견 간부쯤 되는 것일까?

수술을 앞둔 환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따로 교육을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주머니… 그중 내가 제일 젊고 어렸다. 각자가 받는 수술 내용, 수술 후 통증의 처리, 재활을 위한 운동과 공 불어올리기, 물과 미음으로 시작하는 단계별 식사, 퇴원 등등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알아보기 쉽게 잘 정리된 도표와 동영상.

Similar Posts

  • 메멘토 모리 –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나’는 27살에, 44살에, 51살에 각기 다른 세번의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기억할 수 없을만큼 많은 입원과 (최소) 6번의 긴 수술과 1년간의 항암 약물 치료와 6개월간의 방사선 치료가 있었습니다. 일상이라는 두꺼운 얼음이 깨질 때마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우주보다 어둡고 검은 바다보다 차갑고 깊은 미지의 고통 속으로 빨려 내려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살면서 식빵처럼 잘 부푸는 희망과…

  • |

    죽은 사람은 외로워. 황인숙

    ― 나 아무래도 안 좋은가 봐.    꿈도 이상한 꿈만 계속 꾸고    어제는 생전 안 나타나던 길순이가    명림이랑 같이 집에 온 거야. 깜짝 놀라서    “길순아, 너 죽었잖아?!” 그랬다?     조직 검사 결과를 며칠 앞둔 언니가    겁먹은 목소리로 전화했다. ― 동네 의사가 괜찮을 거라 했다며?    마음 편히 가져.    너무…

  • 다시, 일상으로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가 왔습니다. 2021년 9월 17일, 정기 추적검사 결과 암이 재발했다는 진단을 받았고 2021년 11월 8일 위암 제거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나마 남아있던 위장마저 모두 제거되어 이제 저는 위가 없습니다. 좋은 점은 위염이 걸리거나 위가 쓰릴 일이 없다는 점이고 나쁜 점은 배고픔이나 배부름을 잘 느끼지 못하고 소화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배탈이…

  • |

    S형님께

    S형 오늘은 다시 출근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이 지금 저한테 꼭 필요한 일인지 확신이 서진 않지만, 아프기 전의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막상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무엇인가가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액상의 물이 딱딱한 얼음이 되었다가 다시 녹아 물이되는 것과 비슷할텐데요, (만약에…

  • 다시, 일상으로 II

    작년 6월 1일 복직 후 1년이 지났습니다. 이런 저런 결심을 붙여가며 각오를 다졌었는데 1년의 회사 생활이 지나고 나니 그 각오와 다짐은 온전히 두려움을 회피하려는 자기 방어기제였던 것 같습니다. (재택 근무하는 날이 좀 더 많긴 하지만) 출근을 하고 안건을 토의하고 보고를 하고 논쟁하고 할 말과 감정을 속으로 감추는 일들은, 인생을 즐겁게 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는…

  • |

    2024년 10월 22일 오후 3시 15분

    문자 메세지를 전해 받고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유쾌했고 똑똑했고 치열했고 거칠 것이 없던 친구였다. 그에게서 나는 장정일과 조지 윈스턴을 배웠고 재수를 해서 같은 학번의 동기였지만 언제나 선배 같다고 느꼈다. 올 봄에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초여름에 찾아가 그 넉살좋은 미소와 유머를 봤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병이 어떤 병인줄 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