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쓴다.

고백하건대,  나는 몇 해 전부터 뭔가를 쓰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는데 그것은 스스로 시작하면 물릴 수 없기 때문이었고, 남 몰래 썼는데 아무 것도 아닌 글로 남게 되면 곧 내게 주어진 (어쩌면, 그리고 거의 확실한)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리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체가 꽤 두려웠다. 왜냐하면 ‘글’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이데아’인데, 그것을 통째로 날려 보내게 되니까.

그렇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얼마나 비겁하게 만들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라도 조금 들어가면 나는 부러 격해진 감정을 가면처럼 덮어쓴 채 반쯤은 고백처럼 반쯤은 회상처럼 이런 핑계를 내뱉곤 했다.

‘文才가 없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는, 아무 것도 쓸 수 없었어’

이 비열하고 조잡한 자기 위안을 보라. 웃고 있지만 웃는게 아니야.
그러면서도 한편 나는 천재들이 무심결에 드러낸, 다른 사람들이 쉬이 발견하지 못하는) 노력의 흔적을 찾아내고는 내심 안도하며 다시금 쓰는 행위에 대한 쾌감을 힐끔거렸고 심지어 그들이 만든 작가라는 줄에 설 수 있다고 만용을 부렸다.

그래, 아멜리 노통이 태어날때부터 천재였던 게 아니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글을 쓰는노력 끝에 작가가 된 것을 알고 나는 얼마나 기뻐했던가. ‘노통도 천재가 아니었어’

김남주 시인의 번역 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를 봐도 그렇다. 매일 뭔가를 읽고 고민하고 쓴다는 것은 부단한 자기 노력이며 그것은 다시 의지로 신념으로 재생산되지 않던가? 하이네를 연애시인으로 알고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애도를.

내게 쓴다는 행위는, 그리고 읽는다는 행위는 성스러운 기도와 같고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는 경외이며 사랑하지만 품을 수 없는 소나기 맞는 소년의 가슴 떨림이다. 뭐, 이렇게 고백하다보니 다소 장황하고 과잉되지만, 사실  누군들 마음에 품은 욕심 하나 없을까.

그러나 여튼, 오늘부터 다시 쓰기로 한다. 뭐라도 쓰자.
그게 나의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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