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CT 검사

검사를 위해 아침을 거르고 오전 11시 30분부터 PET-CT 검사를 받았다.

PET-CT는 대사 변화와 기능을 영상화할 수 있는 PET 검사와 구조적 이상을 영상화하는 CT 영상을 동시에 획득하여 뇌, 심장질환 및 종양 등을 진단하는 검사입니다.

핵의학과에 도착해 접수를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아래 위 흰 바탕에 병원 로고가 반복되는 환의를 입은 내 모습을 거울에서 발견하고 다시 절망에 빠진다.

아프다, 힘들다, 두렵다, 어지럽다, 토한다, 쓰러진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슬프다…

몸 여기 저기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지난 시간을 허물고 여러 감정으로 머리를 어지럽힌다. 저 밑 어딘가에 있을 줄 알았던 흉터들이 일상의 바로 밑에서 독사처럼 꿈틀대며 다시 나를 위협한다.

거울 속에서 고개를 젓고 탈의실을 나왔다. 간호사는 오른 손 등 위에 바늘을 꽂으며 ‘따끔해요’라고 말했다. 혈당을 체크하고 주사 투입구를 마개로 막았다.

PET-CT실로 이동해 레지던트를 만났다. 그는 나를 안정실에 앉히고는 투입구 마개를 풀고 주사를 놓았다. 방사성 의약품일테고 그래서 특수한 금속성 보조 도구까지 동원된 것일게다. 그는 주사 투입구를 제거하며 약이 잘 퍼질 수 있도록 물을 마시라고 했다. 생수 한병을 건네 받아 벌컥 벌컥 목이 마른 사람 흉내를 냈지만 쉽게 들어가지는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안정을 취한 후에 검사를 할 것이고, 누워있는 동안 핸드폰은 보지 말라고 했다.

침대에 누워 높은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 본다. 카메라가 하나, 환기구가 둘, 스피커가 하나, 에어컨이 나오는 환기구가 하나, 천장은 크고 작은 원형들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자리잡고 있었다.

내 역할은 이제 병상에 있을테지, 에어컨 바람에 흔들리는 은색 실들을 쫓다가 잠이 들었다.

선선한 바닷가에 흰 옷을 입고 쭈그려 앉은 이가 보였다.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지만, J교수가 죽었다는 말을 전했다. 아, J 선생님. 늘 찾아뵙지 못해 죄송스럽고 부끄러운 사람. 인간의 친밀함이란 결국 부딪힘의 횟수에 비례하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스스로에게 당당하려고 그 진신을 부정했었다.

옅은 차임벨 소리에 잠이 깨어 레지던트와 함께 검사실로 이동했다. SF 만화에서 나옴직한 백색의 큰 원통형 기구에 여러 가지 정밀한 장치들이 붙어 있었다. 원통 가운데에는 사람이 누울 수 있는 긴 평판이 있다. 그간의 많은 검사를 통해 이제는 익숙해 졌으련만, 나는 아직도 뭔가의 검사가 잘못되었기를 바랬다. 사실 나는 아무렇지 않은데, 건강한데, 아프지 않은데, 기계가 잘못 측정한 것이라고 말이다.

평판에 누우니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천장이 보인다. 내가 누운 자리 바로 위에 여섯개의 아크릴 보드가 마치 창문처럼 붙어있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나뭇잎, 구름 같은 것들 말이다. 건강함을 상징하는 것일까? 그래서 당신도 이 검사를 마치고 나면 저런 하늘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하는 것일까? 뻔한 마음 씀씀이가 그래도 고마웠다.

내 몸은 천천히 원통 안으로 이동했고 나는 눈을 감고 숨을 죽였다. 몇장의 단층 사진에서는 이미 발견된 종양이 보일테고, 어쩌면 또 몇장의 사진에서 다른 종양이 발견될 수도 있을 게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건강하지 않은 조직이 있는 단층들만 이렇게 아프지 않은 방식으로 완벽하게 제거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눈썹부터 허벅지까지, 온 몸을 낱낱이 단층으로 재구성했다. 그리고 검사실을 나왔다.

환의를 벗고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는다. 나는 아마 꽤 오랜 동안 다시 환의를 입어야 할 테고 어쩌면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 오지 못할 수도 있을게다.

어떤 옷을 입은 내가 진짜 나인지, 물어보고 싶다.

Similar Posts

  • 암 환자의 보호자를 위한 조언

    저는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세번의 암을 치료하며 경험한 가족들의 보살핌과 위로, 도움이 됐던 일들을 중심으로 적어 보겠습니다. 암 환자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은 아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지원 일상적인 작업을 돕습니다 약속 장소까지 운전 환자와 의료진 사이의 소통자 역할 개인 관리 지원 충격에서 먼저 벗어나세요 암 진단을 받은…

  • |

    2024년 10월 22일 오후 3시 15분

    문자 메세지를 전해 받고 나는 어떻게 해야할 지 알 수 없어 당황했다. 유쾌했고 똑똑했고 치열했고 거칠 것이 없던 친구였다. 그에게서 나는 장정일과 조지 윈스턴을 배웠고 재수를 해서 같은 학번의 동기였지만 언제나 선배 같다고 느꼈다. 올 봄에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초여름에 찾아가 그 넉살좋은 미소와 유머를 봤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그 병이 어떤 병인줄 아니까….

  • 다시

    또 다시.암이 재발했다. CT를 찍어 봐야겠지만 전이의 가능성도 있다.삼세번이라는, 우습게도 떠오른다. 진작에. 아쉬움이 많다. 더 잘 할걸.잘 놀아줄걸.더 재미있게 보낼걸.하고 싶은 일, 진작 시작할걸. 외할머니 보고 싶다. 관련된 글: 다시 입원 반성 游泳 조울증 메멘토 모리 –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세번째의 암, 1년이 지났습니다. 정기 검진 8차 정기 검진

  • 암 진단을 받은 환자를 위한 조언

    암 진단을 받고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다면 아마 당신은 당신은 극심한 감정의 변화를 겪는 상태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두렵고 화나고 슬프고 무섭고 억울하고 안타깝고…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 감정의 기복은 지극히 당연한 상태이며 그것에 초월하여 평온함을 갖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는 세번이나 경험을 했지만 점점 더 혼란스럽고 힘들었습니다. 보통 다섯 단계를 거쳐 자신의 병을 받아 들이고…

  • 마음의 평화를 구하다

    참으로 진지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니체. 시지프스의 신화 위를 모두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고 점차 회복하는 중이지만, 곧 다가올 항암 치료 혹은 재발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마음이 몹시 어지럽고 괴롭다.니체는 존재론적 관점에서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지만 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생존의 질문을…

  • 근황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찬 바람이 느껴지면 물처럼 맑은 콧물이 줄줄 흘러 내리는 비염이 난리 칩니다. 지난 여름 오버핏 티셔츠와 배기바지로 비쩍 말라버린 몸매를 감춘 것처럼 겨울에 입을 빅사이즈 티셔츠 몇 장과 면바지 몇 장을 샀습니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있습니다. 뭐, 그들에게는 별 것 아닌 일로 채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한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