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점 밖에 못 주겠는데 왜 추천하나 – 영화 호프 리뷰 (6/10)
<최고이자 최악인 SF 괴물 블랙코미디>
2026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호프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드뷔시 극장을 가득 채운 건 환호와 야유가 뒤섞인 혼돈의 소리였다. 이 영화를 접한 대중들의 반응도 평점 1점과 10점으로 극과 극으로 나뉘고 있다. 이 혼란은 영화 ‘호프’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다.
이야기
무대는 북한 국경 인근의 가상 도시 ‘호포항’이다. 경찰서장 범석(황정민)은 잔인하게 훼손된 소의 사체를 수사하던 중 마을 전체가 정체불명의 존재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의 곁엔 신참 경찰 성애(정호연)와 사냥꾼이자 조카인 성기(조인성)가 있다. 세 사람은 외계 침략으로 밝혀지는 위협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영화는 약 45분에 걸친 오프닝 추격 시퀀스로 시작된다. 이 장면에서 나홍진은 ‘보이지 않는 공포’라는 고전적 기법을 능숙하게 활용했다. 이는 스필버그의 ‘듀얼’과도 필적할만한데 괴물이 지나간 흔적을 마치 디오라마처럼 정교하게 구성하여 효과가 배가되었다. 미술팀에 찬사를 보낸다. 그렇게 괴물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파괴의 흔적과 핏자국만으로 공포를 쌓아 올리는 방식은 분명 효과적이다.

이건 사실 ‘절망’에 관한 영화다
이 영화를 SF로 읽든, 액션으로 읽든, 재난 영화로 읽든 어딘가 어긋나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쩌면 장르를 잘못 설정해서가 아니다. 호프는 사실 ‘절망’에 관한 블랙 코미디에 가깝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리얼리즘의 안경을 쓰고 영화를 해석한다면 도무지 아귀가 맞지않는 황당무계한 작품이 된다. 게다가 제대로 끝맺지도 못해 무책임하고 엉터리인 영화가 될터이다.
마을 이름 ‘호포항’을 영어로 음차한 제목 ‘HOPE’는 그래서 hopeless로 읽는 게 더 정확하다. 인간들에게도 희망은 없고, 외계인들에게도 희망은 없다. 우주적 재앙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과 외계인 모두 거대한 절망에 빨려들어가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희망처럼 보이던 고성기마저 운전자의 실수로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는 장면은 그 부조리함을 대놓고 강조한다.
이 독해를 뒷받침하는 건 영화의 시대 설정이다. 나홍진은 의도적으로 스마트폰이 없는 근과거를 배경으로 택했다. 미등록 카빈 총으로 사냥을 하고 후반부에 AK-47이 등장하는 이 세계에서 마을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다. 우주선 착륙으로 통신망이 두절된 채 주민들은 마을 안에서조차 서로 연락할 수 없다. “국가적 재난인데 왜 군이 출동하지 않냐”는 흔한 의문은 이 고립과 두절이 의도적으로 설계된 것임을 보여준다. 탈출구가 없는 무대, 그 안에서 사람들은 죽음과 공포와 부조리함을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하는 일은 2시 40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시시콜콜한 잡담을 늘어놓는 것이다. 나홍진은 그것을 웃음으로 풀어낸다. 마을 노인이 괴물 때문에 설사를 참아야 했던 일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비트는 대사들, 배우들은 숨 막히는 스릴러 속에 예상치 못한 웃음을 끼워 넣는다. 다만 그 장치들에서 재미를 느끼려면 장르적 혼란에서 우선 벗어나야 한다.
무엇이 빛나는가
황정민의 연기는 흔들리지 않는다. 공포가 밀려오는 초반 한 시간 동안 그의 표정 하나하나가 극의 긴장감을 받쳐낸다. 정호연은 카리스마 넘치는 신참 경찰로 등장해 맹공을 퍼붓지만 생경하다. 알리시아 비칸더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깜짝 등장하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알아채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비중이 작다. 왜 이들이 이 역할을 택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홍경표 촬영 감독(기생충, 버닝)의 카메라는 이 영화의 가장 믿을 만한 자산이다. 거의 모든 장면을 광각 렌즈로 담아낸 그의 영상은 불안할 정도로 왜곡된 클로즈업과 웅장한 와이드 샷을 오가며 나홍진의 혼돈스러운 서사에 시각적 질서를 부여한다. 이 영화는 OTT가 아니라 극장에서 그것도 가능한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한다.
무엇이 무너지는가
문제는 괴물이 모습을 드러낸 이후부터 시작된다. 마침내 실체를 드러낸 외계인은 아바타를 연상시키는 진부한 디자인에 조악한 CG였다. 애써 쌓아 올린 공포감은 한 번에 무너진다. 이후 약 두 시간 동안 영화는 반복적인 전투 장면을 끝없이 이어간다. 말 타기, 자동차 추격, 총격전이 순환하는 동안 서사는 거의 전진하지 않는다.
160분이라는 러닝타임의 80%가 액션으로 채워져 있지만 캐릭터 묘사는 거의 없다. 인물들은 서사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액션을 위해 소비된다.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결말은 당혹스럽다.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고, 마치 거대한 속편 예고편처럼 열린 채 끝난다. 3부작으로 기획된 첫 번째 막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독립된 영화로서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완결성이 없다.

결국 이 영화는 무엇인가
‘호프’는 비디오 게임의 초반부에 가깝다. 플레이어를 끊임없이 자극하지만, 왜 싸우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미룬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이 의도일 수도 있다. 희망(호포)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을에서 희망을 가진 모든 것이 차례로 소멸하는 이야기, 그 부조리함 앞에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건 잡담과 욕설과 허망한 총질뿐이라는 이야기. 그렇게 읽으면 엉성해 보이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추격자, 황해, 곡성으로 쌓아 올린 나홍진의 명성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실망감조차 이 영화가 무언가 거대한 것을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이디어는 쏟아지는데 응집력이 없고, 잘 다듬어진 오프닝과 엉망이 된 후반부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기묘하게 매혹적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싫어할 수 없다.
결말만 제대로 착지했다면 고전이 될 수 있었던 작품이 심야 컬트 영화처럼 남게 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나홍진은 이미 속편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제작비가 확보되기를 바란다. 스타워즈와 한국 공포 스릴러가 섞인 그 세계관이 제대로 완성된다면, ‘호프’가 남긴 물음표들은 그때 가서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다. 호포항에 희망은 생길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