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 (9/10)

그린 북 (9/10)

추천합니다.

로드무비이자 버디 무비는 웬만하면 재미가 보장되는 장르입니다만, 이 작품은 미국 흑인과 백인이라는 뻔하디 뻔한 재료를 가지고 정말 멋지고 맛있게 만든 요리입니다.

1960년대 미국은 인종 차별이 극심하던 때였습니다. ‘히든 피겨스‘ 역시 비슷한 시기의 작품이었죠.

브롱크스(여기는 지금도 위험한)에서 온 이탈리아계 미국인 운전사 겸 보디가드 토니 발레롱가와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의 진정한 우정을 그리고 있는데, 종종 웃기면서 가슴 아픈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정치적인 올바름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현실 사회에 대해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죠.

토니 역을 맡은 ‘비고 모텐슨’은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폭력의 역사’에서 가슴 속에 위험을 감추고 있는 남자를 정말 잘 연기했고, 반지의 제왕에서 아라곤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입니다.

이 작품의 재미있는 점은 영화 제목이 ‘그린북’인데도 실제 작품 안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드러나지 않는 ‘그린북’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린북은 흑인들이 여핼할 때 머물수 있는 식당과 숙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입니다만, 실제로 이런 류의 책이 존재하는 현실 자체가 매우 거북스럽습니다. 미국의 지난 부끄러운 과거이기도 한데, 또 한편 그린북은 그린북이 안전을 보장해주는 장치가 아니라 백인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책이라는 이중성도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흑인을 향한 경찰의 위압적인 폭력, 식당과 호텔의 우아하지만 기만적인 차별과 시비를 보고 있노라면 그린북은 그 어떤 것도 막아주지 못하는 정치적 장식일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극단의 분열로 치닫는 한국 사회 역시 그린북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멸시와 차별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남과 여, 장애인과 비장애인, 부자와 가난한 자, 서울과 지방 등등 가능한 편을 가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철저하게 무시하는 사회가 되가고 있습니다.

이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대로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찾아야 하고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관용이 정말로 필요한 때입니다.

Similar Posts

  • 뱅크잡 (5/10)

    http://www.imdb.com/title/tt0200465 짜임새가 허술하지 않음에도 재미가 없는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장면들이 많은 탓이다.그나저나 이게 실화라는게 더 놀랍네. 관련된 글: 릴리 슈슈의 모든 것 All about lily chou-chou (9/10) 300 (7/10) 리핑 – 10개의 재앙 (4/10) 잭 리처 네버 고 백 (7/10) 극한 직업 (10/10) 파워 오브 도그 (10/10)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6/10) 글로우: 레슬링…

  • 영화는 영화다 (8/10)

    http://www.imdb.com/title/tt1345734 데이빗 크로넨 버그의 ‘비디오드롬’과 안노 히데아키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영화는 영화다’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머리에는 두개의 영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가상과 실재가 혼돈되어있는 경계의 모호함이나 현실로 돌아와 눈을 뜨라 외치는 메세지 같은 것들.시뮬라르크와 시뮬라시옹에 대한 고찰이라도 들어있을까? 이 작품에는 데이빗 크로넨 버그의 기이한 상상력도, 안노 히데아키의 잘난 척도, 보드리야르의 실재도 없지만, 재미있다.내 생각에 그 재미의 원천은…

  • 디워 D-war (2/10)

    http://www.imdb.com/title/tt0372873 2007년 8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영화, D-war를 선택한 것은 영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라 바로 ‘화제가 되고있다’는 그 현상 때문이었다.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의견은 그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지는 것일까?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수준의 영화가 논쟁 거리가 될만큼 한국 영화계는 열악한 상태이고,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빈약한 상상력과 수준 낮은 상식에 기반한다.CG의 수준을 한단계 올려놓았다고?…

  • 밀양 (4/10)

    http://www.imdb.com/title/tt0817225 ‘비밀의 빛’이 칸느에서 통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서양 문명의 토대를 이루는 ‘원죄와 구원’을 아주 지독한 톤으로 끝까지 캐묻고 있기 때문이다.서구를 지탱하는 두개의 기둥은 f=ma의 뉴톤 물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합리주의’ 기둥과 태어나면서부터 죄의식을 지니게 만드는 ‘기독교’ 기둥 . 또한 이 두개의 기둥은 물론 병치할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고 이 기둥을 변주한…

  • after the sunset (5/10)

    related imdb : http://imdb.com/title/tt0367479/Woody is a good actor with heavy personality. 관련된 글: 매트릭스 레볼루션 (10./10) 반 헬싱 (6/10) Batman Begins (6/10) 잘 알지도 못하면서 (9/10) 1987 (9/10) 몬티 파이선과 성배 (10/10) 더 랍스터 (10/10) 산부인과

  • 구타유발자들 (8/10)

    이 작품에는 익히지 않은 삼겹살과 살아있는 쥐를 먹는 것보다 더 지독한 날 것의 냄새가 진동한다. 이 역겨운 악취는 우리가 숨겨놓고 있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던 심리적인 치부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그 부끄러움은 바로 ‘폭력에 굴하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렇게 관객을 불쾌하게 만든다. 관객의 불편함, 그것은 정확하게 이 작품이 원하는 바이며 관객이 불쾌함과 거북함, 거부감을 토로할 수록 감독은 쾌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