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튀르키예 여정의 시작

튀르키예 여정의 시작

경계의 도시, 이스탄불

경계의 도시, 이스탄불

괴뢰메, 첫째 날 – 테마파크 같은 마을

괴뢰메, 첫째 날 – 테마파크 같은 마을

느긋함을 먹는 시간, 카흐발트

느긋함을 먹는 시간, 카흐발트

괴뢰메, 둘째 날 – 일출과 그린투어

괴뢰메, 둘째 날 – 일출과 그린투어

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사프란볼루 첫째날 – 그림 속의 집으로

샤프란볼루 둘째날 – 고양이가 안내한 아침

샤프란볼루 둘째날 – 고양이가 안내한 아침

앙카라 1. 튀르키예의 심장, 아타튀르크

앙카라 1. 튀르키예의 심장, 아타튀르크

앙카라 2. 9천 년 시간을 거슬러, 아나톨리안 문명 박물관

앙카라 2. 9천 년 시간을 거슬러, 아나톨리안 문명 박물관

앙카라 3. 성벽과 백조 사이

앙카라 3. 성벽과 백조 사이

다시 이스탄불 첫째날 – 창 대신 카메라를 겨누는 광장

다시 이스탄불 첫째날 – 창 대신 카메라를 겨누는 광장

다시 이스탄불 둘째날 – 발냄새를 견디고 만난 경이로움

다시 이스탄불 둘째날 – 발냄새를 견디고 만난 경이로움

다시 이스탄불 셋째날 – 테셰퀼 에데림

다시 이스탄불 셋째날 – 테셰퀼 에데림

HDR로 보는 튀르키예

HDR로 보는 튀르키예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외계의 마을, 괴뢰메.

잔뜩 정이 든 괴뢰메를 떠나 사프란볼루로 향한다. 버스로 9시간이 걸리는 긴 여정이다. 네브셰히르 버스 정류장에서 앙카라로, 앙카라에서 다시 사프란볼루로 환승했다.

튀르키예 고속버스의 특징은 마치 비행기처럼 음료를 따라주고 간식을 나눠준다는 점이다. 대개 젊은 청년들이 담당하고 있는데, 한국과 달리 젊은이들이 기꺼이 이런 일을 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장거리 버스 여행이었지만 큰 불편함 없이 잘 이동했다. 창밖으로 계속 이어지는 산 하나 없이 너르고 건조한 풍경은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나톨리아 고원의 황량함이 오히려 평화롭게 느껴졌다.


사프란볼루는 동화책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컬러 그림책에 나오는 유럽의 오래된 목조 가옥들이 가득하다. 이곳은 실크로드의 중요한 경유지였다. 13세기부터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고, 특히 사프란 재배와 거래로 유명해지면서 ‘사프란볼루(Safranbolu)’, 즉 ‘사프란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하던 상인들은 이곳의 카라반사라이에 머물며 사프란과 가죽 제품, 철제품을 거래했다.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지어진 오스만 시대의 건축물들이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94년, 유네스코는 사프란볼루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유네스코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건축물의 아름다움만이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 시대의 도시 계획과 건축 양식,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있는 유산’으로서의 가치였다. 박물관처럼 보존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며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 결정적이었다.

마을의 건축물들은 17세기 오스만 건축의 전형을 보여준다. 1층은 석재로 튼튼하게 쌓고, 2층과 3층은 목재 골조에 회반죽을 채워 넣는 ‘하므 에비(Hımış Evi)’ 양식이다. 이 방식은 지진이 잦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유연성을 제공했다. 건물들은 대부분 2~3층 구조로, 1층은 겨울 거주 공간과 저장고로, 위층은 여름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2층으로 갈수록 바깥으로 튀어나온 ‘추크마(Çıkma)’ 구조다. 좁은 골목길에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지혜였고, 동시에 1층의 상점들에 그늘을 제공했다. 창문은 격자 무늬의 나무 덧창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이슬람 전통에서 여성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도 바깥을 내다볼 수 있게 한 섬세한 배려였다. 붉은 기와 지붕과 하얀 벽, 짙은 갈색의 목재 골조가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마을엔 살짝 비가 내려 촉촉했고, 숙소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언덕길은 울퉁불퉁하지만 정감 넘쳤다. 조용하고 우아하고, 오래되었지만 낡지 않은 마을이었다.

숙소로 개조한 17세기 목조 가옥을 찾아갔다. 정말이지 역사 유물 같은 곳에 짐을 풀자니 새삼 신기했다.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가니, 낮은 천장과 작은 창문, 두툼한 나무 기둥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여기도 괴뢰메의 동굴 숙소처럼 좁았고 다소 불편하고 추웠지만,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300년 전 이 집에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했다.

느긋한 저녁을 먹자고 나왔지만 숙소 근처에는 문을 연 곳이 없었고, 숙소의 아주머니께 물어보니 시장 쪽에 가면 많이 있다고 했다. 내려가는 길 역시나 재미있었다.

샤프란볼루에 왔으니 샤프란티는 먹어야겠지? 생전 처음 마셔본 샤프란티는 매우 건강한 맛이었다. 🙂

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괴뢰메 셋째날 – 벌룬투어와 우치사르성 샤프란볼루 둘째날 – 고양이가 안내한 아침

Similar Posts

  • |

    돼지고기 묵은지 김치찜

    재료 조리 어렵지 않은 요리지만 김치의 신맛, 매운맛, 짠맛 정도에 따라 물의 양과 양념의 양을 조절하는 것이 요령이다. 우리 가족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지만 잘 익은 김치찜은 다들 좋아한다. 만드는 보람이 있는 음식이다. 관련된 글: 비빔 국수 봉녕사 사찰 김치 만들기 체험 수비드 등갈비 바베큐 카츠 테츠야 레시피 #핸드드립 #필터커피 에어로프레스 사용법 #드립커피 #에어로프레스…

  •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This entry is 7의 15 in the series 튀르키예 10일의 기록: 동서양이 만나는 땅을 걷다 사찰기행 인생에 한 번은 꼭, 사찰 가이드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 5대 적멸보궁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 – 조계종 25교구 본사 용덕사 (용인시 처인구) 용주사 (경기도 화성군) – 조계종 3교구 본사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불행과 가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들 중에 SNS를 열심히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깊이 알고 지내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그들과 나의 관계가 서먹하거나 엉성한 것은 아니다. 유유상종,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있는 것일까? 트위터가 시작한 web 2.0의 시대에 나도 거의 모든 일상을 트위터에 공개하던 때가 있었다. 의식의 흐름을 자동 기술하는 것을 넘어서…

  • 택일 & 웨딩플래너

    마침내 결혼 날짜(5/22)가 잡혔고 고민 끝에 웨딩 플래너를 통해 나머지들을 결정하기로 했다.. 결혼(한국에서의?) 자체가 너무 복잡한데다가 그 모든 선택을 늘 최선으로 결정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녀와 나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공통점이 있는 탓에 결혼의 형식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 노력은 최소한으로 하고 결혼 생활을 잘하자는 합의. 어쨌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느끼는 이 막막함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 이사

    결혼과 동시에 정착하여 10년 넘게 살았던 암사동을 떠나 용인으로 이사했다. 막상 떠나오려니 조금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정이구나 싶은 생각. 분주하게 짐을 정리하고 이사 트럭을 따라 용인으로 와서 전입 신고를 하고 내친 김에 취학 통지서와 전학 통지서도 학교에 제출했다. 몹시 피곤한 하루였다. 여기 저기 쌓아 둔 짐들. 인생의 짐들. 관련된 글:…

  • 2026.06.09. 대구 일상

    대구는 처음 방문하는 도시였다. 예상보다 컸고 예상보다 재미있는 도시였다. 특히나 로컬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하는 가게들이 많아서 마음에 들었다. 조카가 있는 경북대학교에 들러 깜짝 티타임을 가졌다. 관련된 글: 조선배 빵집 개점하다 수도이전, 위헌 결정은. 설에 읽을 책들. 청첩장입니다. 새로운 식구, Michael 당신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알지 못했을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