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하동

2023 봄 하동

3일 연휴를 맞이하여 순창 장모님댁에 방문하려고 했으나 때마침 시제가 겹쳐 손님들이 많이 올 예정이라 포기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이미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서 부랴부랴 하동-곡성 1박 2일 여행을 꾸렸습니다.

시간 단위로 일정을 짜고 갈 곳과 먹을 음식의 리스트를 잔뜩 준비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목적지나 숙박지 정도만을 정해두고 그때 그때 맘 내키는 대로 다니는 편입니다. 투어리스트가 아니라 트래블러의 자세.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경험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이는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지향하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아무래도 차가 막힐 것 같아 새벽 6시에 일어나 출발했지만 하동 쌍계사에 도착하니 2시 30분,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 거의 9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지쳤지만 차에서 내려 비가 그친 하동의 천년다향길을 걷고 나니 ‘그래도 잘 왔네’였습니다.

쌍계사 앞 청운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참게탕과 더덕 구이 정식. 칼칼한 맛이 강했고 약간 달았지만 정갈한 상차림이었습니다. 참게탕은 구수한 맛이 좋았습니다만 꼭 먹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고요.

쌍계사에 들렀습니다. 마침 초파일이라 스님께서 나눠주는 백설기를 받아 맛있게 먹었습니다. 스물 몇살 때 왔었지만 남아있는 기억이 아무 것도 없어 처음 온 것과 다를 바 없었는데 아름답고 소박하고 기품있는 절이었습니다.

쌍계사 9층 석탑
일근천하 무난사: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운 일 하나도 없다

쌍계사를 나와 돌아가던 길에 쌍계 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그네 의자에 앉아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쳐다본 학교와 구름, 하늘, 여행자에게 빛나고 기억할만한 시간이었습니다,

하동 하얀집 펜션에 체크인, 숙소 바로 뒤에 차 밭이 있고 바로 앞에는 섬진강으로 내려가는 쪽문이 있었습니다.

쌍계명차에 들러 녹차를 한잔 마셨습니다. 다도를 배워 녹차를 마셔볼까? 취미로 녹차를 시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동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전해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전해주고 싶은데 그렇지 않을 때마다 조급해지는 것에 대해서도요.

평사리 은모래공원을 찾아 갔습니다. 토지의 그 느낌은 별로 없었고 가뭄에 빈약한 물줄기와 고운 모래밭이 있는 너른 공원이었습니다.

모래사장에서는 ‘섬진강 백사장 달마중’이라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행사 담당자 정성모님과 짧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하동의 협동조합이자 회사인 ‘놀루와‘에서 매월 보름달이 뜨는 날 진행하는 행사입니다. 춤과 공연, 연주, 시낭송 등의 프로그램이 있고 5월에는 ‘하동 차 엑스포’ 덕분에 손님이 많아 매주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참가비 2만원이 있으나 행사 자체는 늘 적자인 상태, 그러나 이 행사로 하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하동에 온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OK.

놀루와는 지역 기반으로 이뤄진 회사이자 조합이었는데 행사에 참여하는 연주자나 공연자들 모두 하동에서 활동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일부는 자원 봉사처러 참여하기도 하신다고. 어떤 의도에서 진행되는 행사인지 잘 알 수 있었고, 목적한 바가 잘 이뤄지며 생산적으로 돌아가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따뜻한 녹차를 한잔 나눠주셨고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에는 차를 마시며 묵는 ‘다숙’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체크아웃하고 둘째날 아침 식사는 화개장터에 들러 재첩국을 먹었습니다. 아이들은 재첩회 비빔밥을 주문했는데 산채 비빔밥이 나오고 말았습니다.주방에 있는 외국인 노동자분이 한국어 주문을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인데 ‘한국의 노동 환경, 제3세계를 수탈하는 자본주의’ 등등 생각이 많아지는 아침 식사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하동 국제 차 엑스포’에 방문했습니다.

감동화개에 들러 녹차를 한잔 마시며 돌아갈 준비를 했습니다.

올라가는 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무작정 임실로 빠져 나갔다가 우연히 임실치즈랜드 테마파크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여행자의 (성공적인) 선택이랄까요. 매우 큰 규모로 잘 꾸며져있었는데 놀랍게도 무료입니다. 임실 치즈가 들어간 피자, 파스타로 배를 채우고 테마파크 여기저기를 둘러봤습니다. 마침 5월이라 장미가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올라오는 길은 비가 퍼붓고 있었고 역시나 5시간을 훌쩍 넘기며 긴 여행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이들은 ‘하동은 좋은데 너무 멀다’고 평했고, 딱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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