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가는 길에 만난 뜻밖의 보물, 고암 이응노

홍성 가는 길에 만난 뜻밖의 보물, 고암 이응노

홍성 가는 길에 만난 뜻밖의 보물, 고암 이응노

홍성으로 가는 길, 무심코 들른 곳에서 나는 한국 미술사의 거장을 만났다. 고암 이응노. 부끄럽게도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내게, 그의 미술은 마음을 움직이는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건축도 예술, 작품은 그 이상

이응노 기념관 자체가 건축대상을 받을 만큼 근사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작품들은 건축의 아름다움마저 넘어서는 감동이었다. 추상화라고 하면 어렵고 난해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이응노의 작품은 달랐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이렇게 깊이 이해되는 추상화라니. 왜 이런 화가가 더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 정도였다.

군상, 그 강렬한 침묵의 외침

특히 연작 ‘군상’은 잊을 수 없다. 문자와 그림, 형태가 하나로 어우러져 전달하는 메시지는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세로로 길게 그려진 군상 앞에서 아내와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사람들이 어딘가로 도망가는 것 같지 않아? 너무 불안하고 위태로워 보여.”

우리는 그림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불안을 나눴다. 그리고 나중에 해설집을 펼쳐보고 소름이 돋았다. 1980년 5월, 광주의 소식을 듣고 그린 작품이었다. 예술가의 감각이, 그의 붓끝이 역사의 비극을 어떻게 담아내는지 온몸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예술가의 삶, 예술가를 알아보다

고암 이응노의 생애를 알수록 그는 천상 예술가였다. 동백림 사건으로 고초를 겪었고, 파리에 한옥을 짓고 살았던 그의 삶.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화가 나혜석의 제자였다. 스승 나혜석이 머물렀던 수덕여관을 자비로 사들여 보존한 일화는, 예술가가 예술가를 알아보는 깊은 연대를 보여준다.

수덕사 앞에 잘 보존된 수덕여관을 찾았다. 그곳 뒤편 암석에 새겨진 암각화도 일품이었다. 이응노라는 한 사람의 예술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그가 우리와 다른 세계를 보고 살았던 사람이라는 증거들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더 알고 싶어진 화가

수묵과 농담, 문자와 형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고암 이응노. 그의 생애에 깊이 감복하며, 기념관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화집과 전기를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홍성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곳에서, 나는 뜻밖의 보물을 발견했다. 고암 이응노라는 이름, 이제 내 안에 깊이 새겨졌다.

Similar Posts

  • |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하루키의 에세이는 일단 재미있습니다. 읽다 보면 절로 피식거릴 때도 있고 크크크크 하면서 격하게 동감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이같은 여행 에세이는 하루키의 시각과 생각을 통해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을 둘러보는 맛을 느낄 수 있어 더 재미있습니다.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그리스 등 그가 집필 생활을 하면서 몇개월 몇년씩 살았던 곳을 다시 방문하여 느끼는 애착과 반가움을 같이 느낄…

  • 신리 성지 (충남 당진)

    충남 당진에 위치한 신리성지는 도착하자마자 탄성이 나옵니다.고요한 언덕에 잔잔한 바람과 하얀 하늘,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한 분위기에 절로 자세를 경건하게 가다듬게 됩니다.순교의 아픔이 깃들어 있지만 지금은 평화의 빛으로 가득합니다. 놀라울만큼 평화로운 곳. 신리성지는 19세기 조선 천주교 순교의 역사가 살아있는 교우촌입니다.병인박해 때 안토니오 성인(한글이름 안돈이, 다블뤼 주교)와 오메트르, 위앵 신부, 황석두, 손자선 성인 등 많은 신앙인들이 이…

  • 2023 518 전국 노동자 대회

    몇 년 전 회사에 노동 조합이 생겼을 때 신기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절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에서 노조가 생겼으니 신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모아 노조를 만들어 냈는데 아무런 힘을 보태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노동조합의 ‘대의원’으로 작게나마 힘을 보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세번째의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고 다시 회복하는 어두운…

  • 영주 여행

    영주를 자주 가는 편입니다. 서울에서 가까운 편이고 부석사, 소수서원, 희방사 등의 멋진 문화재가 있고 사과, 포도, 복숭아, 인삼, 송이버섯, 한우 등의 좋은 농축산물과 생강 도너츠로 유명한 정도너츠가 있습니다. 특히 무량수전 올라가는 언덕 길은 은행 나무가 노랗게 빛나는 가을이 가장 좋지만 봄이나 여름, 겨울에도 각기 다른 멋을 보여줍니다. 화엄종의 본찰, 화엄의 세계를 본 딴 가람의 배치,…

  •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조계종 8교구 본사

    사찰기행 인생에 한 번은 꼭, 사찰 가이드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 5대 적멸보궁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 – 조계종 25교구 본사 용덕사 (용인시 처인구) 용주사 (경기도 화성군) – 조계종 3교구 본사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조계종 8교구 본사 구인사 (충청북도 단양군) 은성사 (경기도 용인시) 마곡사 (충청남도 공주시) 조계종 6교구 본사…

  •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사찰기행 인생에 한 번은 꼭, 사찰 가이드 오대산 중대 사자암 적멸보궁 (강원도 평창군) – 5대 적멸보궁 법륜사 (경기도 용인시) 봉선사 (경기도 남양주) – 조계종 25교구 본사 용덕사 (용인시 처인구) 용주사 (경기도 화성군) – 조계종 3교구 본사 직지사 (경상북도 김천시) – 조계종 8교구 본사 구인사 (충청북도 단양군) 은성사 (경기도 용인시) 마곡사 (충청남도 공주시) 조계종 6교구 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