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롤랑 바르트류의) ‘해석의 무한성’에 관심이 있다면 모든 씬과 대사에서 숨은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재미를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저는 도입부에서 한동안 화면 자체가 매우 불편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어 지루하기까지 했는데 그것은 정통적인 영화 문법에서 사용하지 않는 앵글과 구도 때문이었습니다.
마주보고 대사를 주고 받는 장면에서 화자와 청자의 위치가 거울을 통해 왜곡돼 기준없이 뒤바뀌거나 (캐릭터의)권위 관계를 따르지 않는 양각과 부감 등이 그간 제가 보고 익숙했던 영화들과 너무 달랐습니다. 사실 고다르 영화에서 처음 느꼈던(배우들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이질감과 그에 이은 놀라움에 비견할만 했습니다.
‘이런 파괴적인 영화라니!’
현기증이 날만큼 복잡하고 어지러운 영화였지만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에서 주는 궁금증-무엇과 무엇이(혹은 누가 누구와) 헤어지는 것인지, 그 결심은 어떤 것인지-은 경찰과 피의자라는 두사람을 보면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 서래는 더이상 치유될 희망 없이 고통 받는 엄마와 헤어질 결심을 하고
- 서래는 붕괴된 해준을 바라보며 헤어질 결심을 하고
- 해준의 아내는 해준과 서래를 보며 헤어질 결심을 하고
- 산오는 (언제라도)헤어질 결심을 한 채로 미용실 여자를 만나고 있고
- (서래의 헤어질 결심을 알고 난 후) 해준은 (마침내 그리고 뒤늦게) 서래와 헤어지지 않을 결심을 하지만 만조의 바다 속에서 신발끈을 묶는 것이 다였습니다.
애초에 경찰과 피의자, 이성과 욕망, 자부심과 본능의 이분법으로 명확하게 해준과 서래를 갈라 놓고 영화가 시작됐습니다만, 두 사람의 긴장된 교류를 끌어가는 것은 잘 전달되지 않는 언어와 떨리는 목소리 같은 불안함이었습니다. 그 어색하고 아슬한 교감이 서로에게 밀물과 썰물처럼 다가오고 사라지며 영화를 끌어가고 게다가 감각적이고 파괴적인 카메라 앵글이 더해져 놀랄만큼 선명한 이미지 컷들(개미가 기어다니는 눈과 해준의 인공 눈물, 해가 지는 바다를 배경으로 서서히 잠기는 서래의 죽음, 치마가 올라간 서래의 허벅지, 산오가 도망다니는 환상적인 옥상 추격씬 같은)이 관객의 감정을 아주 강하게 찌르곤 했습니다.
해준을 붕괴시킨 서래가 팜므 파탈 같다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러기에 서래는 너무 불쌍한 (그리고 예쁜)사람이었습니다. 운명도 폭력도 죽음도 그리고 사랑까지 마침내 모두 받아들이는 서래야말로 진정한 물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은 두 사람을 묶는 유일한 단어였는데 마지막 시퀀스에서 바다에서 헤어지지만 이것은 또한 해준에게 미제사건으로 남게 될 (어쩌면) 영원한 만남이기도 한 것이었습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의 바로 그 물.
서로에게 운명적으로 끌리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결국 불행해질 수 밖에 없나 하는 감상에 빠져 아름답지만 슬픈 영화였다고 생각했습니다.
ps. 탕웨이는 ‘만추’에서도 그랬듯이 아주 좋은 연기를 보여줬습니다. 한국의 감독들은 탕웨이와 더 좋은 작품을 찍기 바랍니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