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패배는 나의 힘 – 황규관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댓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善)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패배는 나의 힘, 황규관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라는 시인의 물음은, 자조적이지만 원칙적이라 울림이 크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은 싸움의 연속이 되어버렸고, 승자는 패자를 짓이기고 한번이라도 진 패자는 몇계단씩 굴러 떨어져 위태로운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시 싸운다는 것은, 승패와 관계 없이 계속 살아야 한다는 당위를 의미하면서 한편 졌지만 다시 싸울 수 있는 올바른 사회구조가 필요하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패배는 나의 힘. 시인을 제외하고, 이렇게 얘기하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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