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 이병률
빈집으로 들어갈 구실은 없고 바람은 차가워 여관에 갔다
마음이 자욱하여 셔츠를 빨아 널었더니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가 눈물 같은 밤
그 늦은 시각 여관방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옆방에 머물고 있는 사내라고 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왜 그러느냐 물었다
말이 하고 싶어서요 뭘 기다리느라 혼자 열흘 남짓 여관방에서 지내고 있는데 쓸쓸하고 적적하다고
뭐가 뭔지 몰라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데 사내의 방에 가지 않았다
간다 하고 가지 않았다
뭔가를 기다리기는 마찬가지,
그가 뭘 기다리는지 들어버려서 내가 무얼 기다리는지 말해버리면
바깥에서 뒹굴고 있을 나뭇잎들조차 구실이 없어질지도 모른다
셔츠 끝단을 타고 떨어지는 물소리를 다 듣고 겨우 누웠는데 문 두드리는 소리
온다 하고 오지 않는 것들이 보낸 환청이라 생각하였지만
끌어다 덮는 이불 속이 춥고 복잡하였다
누군가의 지루한 발표.
무심코 연 전화기에서 저런 시가 튀어나왔다.
두번을 더 찬찬히 읽어 내려가며 나는 한없이 가라앉았다.
외롭고 쓸쓸하고,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것 같이 우울하고 또 우울한 문장들 사이에 사람을 진정시키는 손길이 숨어 있었다.
시인은 사람들이 애써 뒤집어 쓰고 있는 위선의 옷을 발가 벗겨 놓고 외로움에 쭈삣거리는 그들을 향해 깔깔거리는 어이없지만 악의 없는 족속들이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