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말죽거리 잔혹사는 ‘패러다임의 교체‘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위의 문장을 보고 뭔가 낯 간지러운 웃음이 새 나온다면 당신은 패러다임의 저쪽에 서있는 것이고, 아무런 생각이 없다면 당신은 패러다임의 이쪽에 있는 것입니다.
또 모리스 앨버트의 Feelings/진추하의 One summer night 같은 노래가 익숙하다면 저쪽에, 그렇지 않다면 이쪽에.
마찬가지로 고고장, 통기타, 검은색 교복, 이소룡, 올리비아 핫세 등은 저쪽이고
나이트, 부킹, 힙합, 리버피닉스, 브릿니 스피어스는 이쪽입니다.학교를 장악하는 세가지의 패러다임, 그 변화의 수순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우식
우식이 그저 무식하게 파워만 가진 낭만파였고 그것은 70년대 초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이라 생각합니다.
독재자 박정희 정권(아직도 박정권에 향수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정말 답답해 미치겠습니다만)의 개발 독재 이데올로기로 상징되는 새마을 운동.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근면,성실한 자세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잘 살게 된다는 논리는, 속이는 자도 속는자도 어리숙한 시절이기 때문에 가능했겠지요.
2. 종훈
그런 우식을 극복하는 패러다임은 계략과 음모입니다.
바로 선도부장 우식이 그렇지요.
햄버거를 끌어들여 우식에게 염산을 퍼붓고 상처를 입힌 후에 ‘식모 아들’ 운운, 적을 흥분시키는 심리전까지 펼쳐보이며 치밀함을 내보입니다. 종훈은 학교를 장악하지만 그러나 학교를 통치하는 방식은 우식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두환 정권쯤 되겠습니다. 치밀한 쿠데타에 정권 탈취와 언론 통폐합 그리고 3S를 이용한 우민 정책.
3, 현수
새롭게 등장하는 패러다임인 ‘현수’는 위의 둘과는 확실히 다릅니다.
체력을 기르고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쉼 없이 준비하고 적절한 때를 기다립니다. 상대해야 할 적들이 많으므로 쌍절곤을 준비하고, 기습하여 허를 찌릅니다.
이것은 현재의 패러다임입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의해 무한경쟁하며 살아가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고 거기서 한발짝만 밀려나도 ‘잉여인간’ 취급을 받게되는 살벌한 풍경.
늘 정답을 찾아내야 합니다만, 한 문제의 정답을 찾았다고 해서 삶이 편해지지는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문제가 쏟아지고 한번 오답을 내면 문제는 어려워지기 시작합니다.
현수는 학교 유리창을 박살내고 욕을 퍼붓고 학교를 떠나가지만
우리는 그렇게 자본주의를 떠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떠나갈 곳이 없다고 해야할 까요?
4. 이소룡 VS 성룡
영화의 마지막에서 한번 더 강조되는 패러다임의 교체는 이소룡과 성룡입니다.
감독은 이 둘의 대결에 대해 평가를 유보합니다.
지난 패러다임일지라도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지 않겠느냐, 현재 우리들의 삶에 깔린 무한 경쟁의 패러다임은 너무하는거 아니냐의 얘기를 하고 싶은게 아닐까 라고 생각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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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고 보면 같은 70년대의 풍경을 그리고 있는 ‘친구’ 등과 확실히 다른 선 상에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차별화된 의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유하(제겐 시인 유하가 더 익숙합니다만) 감독은 이런 정도입니다. 아직까지 그에게서 평균 또는 평균 약간 이상의 뭔가를 기대하는 아우라를 발견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2004년 대한민국의 패러다임 자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근근한 일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
사랑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좀, 내주지.
텍스트를 심심풀이로 건드리는 사람들의 특징.
자의적 과잉 해석.
영화를 맨날 이렇게 심각하게 보다 보면 진정 즐길 수 없어지지 않을까요?
너무 심각해~~
말죽거리 잔혹사는 “권상우”의 재발견과 그의 멋진 몸매를 볼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90점 이상임~
그리고 1970년대 후반의 학창시절의 소소한 일상들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근데 난 남자 고등학교는 그렇게 많이 때려요??
남자 고등학교의 폭력은 상상을 초월해.
학생들끼리의 싸움–볼펜이나 포크로 머리를 찍거나, 대걸래 자루를 뽑아서 휘두르거나, 책상을 들어올려 던지거나–
선생이 학생들한테 휘두르는 갖은 폭력–주먹으로 얼굴, 발로 가슴, 당구 큐대로 힙, 출석부로 머리–
그땐 잘 몰랐는데,
그 “어떤 경우”에도 학교 내에서 폭력이 행사되면 안된다고 생각해.
학생들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이고, 그것이 곧 그의 인격형성에 큰 장애가 되거든.
그런 누적된 폭력이 사회를 계속 억압적으로 만들고, 타인의 인권 유린에 무감각해지게 만들어.
ps. 내 듣기론 당시의 여고도 만만치 않던데?
ps2. 근데 요즘은 좀 나아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