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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518 전국 노동자 대회

  • yoda 

몇 년 전 회사에 노동 조합이 생겼을 때 신기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절대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로 가득한 회사에서 노조가 생겼으니 신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뜻을 모아 노조를 만들어 냈는데 아무런 힘을 보태지 못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노동조합의 ‘대의원’으로 작게나마 힘을 보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21년 12월 세번째의 암 수술을 받고 퇴원하고 다시 회복하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면서 제 가장 큰 결심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며 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화섬식품노조에서 준비한 518 기념 행사에 1박 2일로 참석했습니다.

행사 일정

1. 일정 : 5/12~13(금 토 이틀간)

2. 집결 장소 / 시간 : 광주지하철 문화전당역 6번 출구 앞 아시아문화광장 / 13:00

3. 강사 : 김미순 대표님(전 광주노동자교육센터 대표, 현 산수책방 책방지기)

4. 프로그램

● 1일차(구.전라남도청 – 전일빌딩 – YMCA – 5.18민주화운동기록관 – 홍남순 변호사 사적지 – 이후 저녁 식사 / 숙소)

● 2일차(조식 – 민족민주노동열사 묘역 순례 – 5.18민주묘지 답사 – 점심 식사 – 제43주년 5.18민중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석 – 해산

5. 숙소 주소 : 광주 동구 동명로 20번길20 오아시타호스텔(전체 대여, 문화전당역 도보 12분 거리)

1일차

SRT 예약은 진작에 마감되어 지회장과 같이 자차로 이동했습니다. 그냥 저냥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길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 잘 통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해 ‘나주 곰탕 하얀집 양산점’에 들러 점심을 먹었는데 이 곰탕은 그야말로 100점 만점에 120점도 모자를만큼 완벽한 맛이었습니다.

처음 방문한 곳은 전남도청이었습니다. 마지막까지 계엄군에 맞서 싸운 곳, 지금은 복원 작업이 한참 진행 중이었습니다.

두번째로 방문한 사적지는 전일빌딩, 진상 규명 조사를 통해 헬기 기총 사격 흔적이 245곳 발견되었고 현재는 전일245라고 불리웁니다. 전일빌딩 전체가 큰 박물관처럼 구성되어있고 다양한 전시를 통해 광주 항쟁의 여러 사건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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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기록관에서는 AR로 역사를 체험하는 첨단 기기가 있었습니다. (피곤한데다가 AR 기기의 어지러움증이 싫어서 체험하지 않았는데) 아마 하늘로 올라가 518 당시의 광주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들불 야학의 윤상원 열사를 비롯 여러 열사들에 대한 기록과 판화 등의 예술 작품을 둘러봤습니다.

저녁을 먹고 동명동 거리를 둘러봤습니다. 프랜차이즈 가게가 거의 없었고 간판도 인테리어도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된 그야말로 힙한 가게들로 가득했습니다. 동리단길이라고 하더군요.

숙소로 돌아와서는 다들 맥주캔과 과자를 앞에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로 즐거웠습니다. 직장도 직업도 모두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살아갈 환경도 다르겠지만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변혁에 대한 느긋하지만 확고한 낙관, 미래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 휘어질 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강인한 사람들에 둘러쌓여 많은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2일차

아침 식사 후에 망월동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습니다.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학살의 원흉들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이 가야 할 민주의 길도 아직 한참 남았다는 뜻이겠지요.

김남주 시인의 묘비 앞에서 한참을 서서 많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언제나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 타인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자신에세 한없이 투철한 전사.

점심 식사를 마치고 3시부터 시작되는 전국 노동자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각 산별 노조의 노조원들이 금남로를 가득 메웠고 길가의 큰 깃발들은 자랑스럽게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소회

나, 우리에게 광주는 성역입니다. 세미나를 하기 전에 광주를 애도했고 술을 마시다가 눈물을 흘리는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모두가 숙연해지는 그런 무엇. 몇 십년 만에 찾은 광주는 상처를 가리고 애써 웃음짓는 투사처럼 느껴졌습니다. 내년에는 식구들 모두가 함께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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