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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북해도 (7월 22일 ~ 7월 25일)

  • yoda 

올해 3월 쯤이었네요. 날이 포근해지면서 어디라도 떠나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한국에서 가장 가깝다는 후쿠오카를 혼자서 다녀오려고 했습니다. 4월의 평일이면 비행기도 숙소도 비싸지 않고 잘하면 벚꽃도 볼 수 있겠네 하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여행 계획을 말하자 아내는 7월에 아이들 방학 일정에 맞추는게 같이 가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코로나가 풀렸고 어딘가로 나가고 싶은 건 저 뿐만은 아니었나 봅니다. 결국 한여름 극성수기에 일본을 가게 됐는데,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목적지를 훗카이도로 변경했습니다. 여름의 북해도는 어떨지 기대가 됐습니다.

7월 21일

특별한 준비물은 없었습니다. 110v를 사용하는 일본에서 사용할 돼지코 몇개와 휴대폰 충전기, 카메라와 상비약, 모자, 선글라스, 티셔츠와 반바지 등을 챙겼습니다.

일본에서 휴대폰 사용을 위해 이번에는 물리적인 유심칩이 아니라 e-sim을 사용해 봤습니다. 구입 후 메일로 날아오는 칩 정보를 QR코드로 기기에 활성화 시키면 칩을 갈아끼우는 번거로움 없이 일본의 통신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폰에 2개의 유심이 꽂혀있는 상태가 되고, 원하는 통신사를 골라서 쓰는 방식입니다.

7월 22일

인천 공항 제2여객 터미널

진에어 항공이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로 옮겨져 이번에 처음으로 가보게 됐습니다. 제1여객 터미널에 비할만큼은 아니지만 넓고 쾌적했습니다.

2023년 북해도 (7월 22일 ~ 7월 25일)

신치토세 국제 공항

비행기는 만석이었고 e북을 잠시 읽다가 잠들었습니다. 역시 이코노미석에서 고개를 세우고 잠들기란 불가능에 가깝군요. 인천부터 신치토세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 걸렸습니다.

닛산 렌트카

예약을 완료하고 모든 비용은 물론 보험 가입까지 완료된 렌트카를 받기까지 무려 3시간 가까이가 소요됐습니다. 일본의 아날로그 기업 문화와 그 비효율성에 대해서 실감한 사건이었습니다. 짐작해보면 이 렌트카 사업소의 업무 방식은 이랬을 것 같습니다.

  1. 공항에 도착한 렌트카 예약자가 공항 렌트카 사무소에 방문한다.
  2. 공항 사무소 직원은 예약자에게 번호표를 배부하고 셔틀버스를 부른다.
  3. 그리고 아마 차고지에 예약번호와 예약자를 전화로 알려준다.
  4. 예약자는 셔틀버스를 타고 차고지르 이동한다.
  5. 아마 예약자가 이동하는 동안 차고지에서는 서류와 차량 준비를 할 것이다.
  6. 번호표를 받은 예약자가 차고지에 도착하면 미리 준비한 서류를 확인하고 차량을 대여해 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공항 사무소에는 아무도 없었고 차고지로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습니다. 몇몇의 한국 사람들이 공항 2층으로, 안내소로, 닛산 서울 사무소로, 예약처로 바쁘게 전화를 걸고 뛰어다닌 결과 셔틀버스가 왔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1,2의 절차가 없는 채로 (번호표를 받지 못한 채로) 차량 입출고지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카오스가 시작됐습니다. 원래의 업무 프로세스에 벗어나는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쳤고 게다가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바쁘고 빠르다는 한국인들, 고성과 클레임과 불만으로 사무실이 소란스러워졌습니다.

1에서 배부한 번호표가 없으니 입출고지에서는 누구를 먼저 처리해야 할 모르고, 역시나 2,3의 처리과정에서 누가 왔는 지도 알 수 없으니 서류를 준비하는 데에 시간이 엄청나게 걸립니다.

우여곡절 끝에 거의 차를 받았고 오후 3시가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온몰 – 교자 오쇼

렌트카 때문에 시간을 오래 보내 점심 때가 한참 지났습니다. 구글맵을 켜고 별점 높은 식당을 찾아갔는데 목적지에는 찾던 식당이 없었습니다. 난처해하는 중에 눈에 띈 이언몰, 푸드코트에 가서 교자 오쇼라는 중국 식당 체인점에 들렀습니다. 볶음밥과 교자만두 등 일본의 첫 식사로는 예상하지 못했던 음식을 먹었습니다. 뭐 이것도 여행의 재미.

호텔 노르드 오타루

첫번째 숙소입니다. 어떤 내력이 있는 지 모르겠지만 제법 고풍스런 분위기를 갖춘 호텔이었습니다.

짐을 풀고 호텔 바로 앞의 오타루 운하를 산책했습니다. 깨끗한 공기, 선선한 바람, 크고 화려하진 않아도 잔잔하게 흐르는 운하와 운하를 따라 늘어선 카페들이 운치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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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라쿠 회전 초밥

일본에 왔으니 초밥을 먹어야겠지요. 식당은 꽤 컸는데 7팀 대기가 있었습니다. 30분~40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테이블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회전 초밥집 경험이 많지 않아서 특히 더 재밌어 했습니다. 주문 용지에 원하는 초밥을 체크 표시하는 방식이라 파파고와 구글 렌즈 등 각자 편한 방식으로 초밥을 주문했습니다. 이런 때 기술의 발전을 실감합니다. 조만간 실시간 통번역도 가능한 떄가 오겠지요.

저녁을 먹은 후 산책을 했습니다. 오타루의 여름 밤은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했는데, 마치 한국의 초가을 대기에 늦여름 기온을 합쳐놓은 것 같습니다. 게다가 온기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가로등에 달린 유리 풍경의 맑은 울림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어 줍니다. 혼자 다녀도 함께 다녀도 기분 좋을 밤 거리였고 사람이 많지 않아 한적하고 조용했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음식점의 간판과 음식 사진을 구경했습니다. 천천히 한참을 걸어 올라 시장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 왔습니다. 식구들은 각자 무슨 생각을 하며 걸어다녔을 지 궁금했습니다.

7월 23일

삼각 시장 – 川嶋鮮魚店 鮮魚食堂かわしま

아침부터 웬 시장입니까? 삼각 시장이라는 곳에 들러 카이센동을 먹을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카이센동은 신선한 해산물과 생선회 등을 올려 먹는 덮밥이었습니다. 아침 혹은 저녁에 들러야 하는데 오후에는 삿포로로 이동해야 해서 아침에 오게 됐습니다.

음식 가격은 매우 비쌌습니다. 보통의 카이센동, 예를 들어 연어를 가득 올린 덮밥이 3,000엔 정도였고 모듬 해물로 넘어가면 4,000엔 그리고 킹크랩이나 랍스터가 올라가면 5,000엔이 훌쩍 넘어가는 가격입니다. 모처럼의 여행이니 큰 맘먹고 각자 먹고 싶은 덮밥을 가격 제한 없이 먹고 왔습니다.

밥을 다 먹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는데도 9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일요일 오전의 삿포로는 한적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오타루 오르골당

오르골당에는 정말 많은 오르골이 있었습니다. 평생 본 오르골보다 많은 오르골이 총 3층의 건물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습니다. 둘째는 끊임없이 이 오르골 저 오르골을 열어 소리를 들어보곤 했습니다. 유명한 음악이 담긴 오르골이 품절된 것을 보며 ‘역시’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었고요. 반면 큰아들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건성건성 다니고 있었습니다. 삶은 받아들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재미를 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런 시기려니 하고 내버려두었습니다.

르타오 본점

치즈 케잌이 맛있다며 역시 빵이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내가 고른 카페였습니다. 유명한 곳이니 대기표를 받고 한참을 기다려야 할만큼 손님이 많았는데 절반 이상은 중국인이었습니다. 맛있는 케익과 홍차, 즐거워하는 식구들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렇지만 행복은 이런 곳에서만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일상이 흥미롭고 평화롭고 기분 좋아야, 그게 진짜 행복이라는 확신.

록카테이

르타오를 나와서는 거리 곳곳에 있는 유리공예점을 들렀습니다. 록카테이는 건물이 이뻐서 한 컷.

오타루 기타이치 유리 공방

예쁜 유리 공예 작품이 많았지만 제 관심을 끓었던 건 오히려 우드카빙이었습니다.

라멘 쇼다이

일본에 왔으니 라멘을 먹을 때가 됐습니다. 구글맵을 켜고 가까운 라멘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일 30개 한정이라는 흰 간장 라멘, 백라멘이 마침 4개가 남았다고 해서 다같이 백라멘을 시켜서 먹었습니다. 진하고 느끼하지 않은 육수, 야들야들한 차슈, 반숙란과 김까지.

유니클로

두 아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춘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큰아들은 묵묵부답 혼자만의 동굴에 들어가 있고, 둘째아들은 헤어스타일이며 옷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입을 바지가 없다는 둘째 아들을 위해 유니클로에 들르기로 했습니다.

사실 유니클로는 혐한 기업이고 패스트패션을 취급하는 가게여서 가급적 이용하지 않아야 하는데, 뭐랄까 가끔은 아닌 척 무시하고 편리를 추구하게 됩니다. 이러면 안되겠죠.

청바지를 비롯해 몇개의 바지를 입어 본 뒤에 카고바지를 하나 샀습니다. 저는 오타루 한정이라는 삿포로 맥주가 그려진 티셔츠를 살까 하다가 말았습니다.

이제 삿포로로 이동할 시간이 됐습니다. 짐을 챙기고 체크아웃하고 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아, 체크 아웃하고 막 출발하려는 순간 아내는 알아챘습니다. 객실에 핸드폰을 두고온 것을. 올라가보라는 카운터의 말에 따라 객실에 갔지만 문은 닫혀있었고 몇차례 오르락 내리락한 끝에 핸드폰을 찾았습니다.

삿포로 뷰 호텔

숙소 앞 오도리 공원에서는 삿포로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사람이 한명 밖에 없어서 그냥 스쳐 지나면 맥주 마시는 사람들을 구경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아내가 가보고 싶어했는데 못 이기는 척 가볼껄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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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가 돈키호테 삿포로 다누키코지 본점

일본에 올 때마다 들르기는 하는데 이제 돈키호테는 그만 와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만 아내는 동전 파스 등 꼭 사야하는 게 있다 하고 둘째는 일본에서만 파는 무슨 맛있는 젤리를 사야겠다고 성화를 부립니다.

동전 파스와 소화제 같은 의약품, 온갖 젤리를 사 모았습니다. 큰 아들과 저는 간식으로 먹을 과자를 몇봉지 샀습니다.

수아게+

스아게+에 왔습니다. 스프 카레는 이번 일본 여행에서 제가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이었습니다. 카레를 국처럼 옅은 농도로 끓이고 거기에 각종 토핑을 얹어 밥과 함께 먹는 음식입니다. 카레 특유의 향이 살아 있으면서 매운 맛이 가미되어 국처럼 들이마시다 보면 절로 몸이 뜨거워지는 음식입니다. 북해도의 차가운 날씨와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누키코지 상점가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삿포로 TV 타워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다가 삿포로 텔레비전 타워에 놀러 가기로 했습니다. 걸어가면 좋을 거리였지만 큰아들이 발을 좀 다쳐서 택시를 타기로 했습니다. ‘삿포로 텔레비젼 타워?’라고 물으니 ‘테레비 타워!’라고 답을 받아 냉큼 올라탔습니다. 기사님은 일본어로 뭔가를 이야기했고 우리는 파파고를 이용해서 소통을 시도했지만 정확히 무어라 하는 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친절한 미소가 기억에 남네요. 짧은 거리에 비해 비싸게 나온 택시 요금에 둘째가 놀라워 했고, 일본의 택시요금은 매우 비싸서 한국에서처럼 장거리는 이용하면 안된다는 팁을 알려줬습니다.

돌아오는 길은 오도리 공원을 쭉 지났습니다. 밤이 깊었지만 기분 좋게 선선한 공원에는 버스킹을 하는 청년과 그를 바라보는 몇몇의 관객들, 스케이트 보드를 지치는 청년들,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습니다. 어딘가 어색한 아마추어의 노래였지만 잔디밭에 누워 음악을 듣던 시간이 가장 좋았다고 아내는 말했습니다.

7월 24일

요시노야

이른 시간 적당한 음식점을 찾지 못해, 돈부리를 만드는 체인점에 들렀습니다. 한국의 김밥 천국 같은 가게인듯 했는데 혼자 아침 식사를 하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또 메가 돈키호테에 들렀습니다. 물과 간식과 벨트를 샀고 둘째는 어제에 이어 또다시 젤리를 구입했습니다.

부처의 언덕 (モアイ像)

아침 일찍 길을 나선 이유는 삿포로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부처의 언덕에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입니다. 입구에는 뜬금없이 모아이 석상이 늘어서 있었는데 이상하긴 했지만 거대한 크기의 석상은 사진 배경으로 매우 좋았습니다.

안도 타다오의 건축은 멋졌습니다. 원주 뮤지엄 산에서 느꼈던 자연과 콘크리트와 배경의 조화가 이곳에서도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직각의 차가운 콘크리트 건축물 사이로 텅빈 여백들이 문을 만들고 장식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작은 자갈이 깔린 직사각형의 넓은 광장에 아주 얕게 물이 담겨 있었고 그 물은 바람이 불 때마다 물결을 만들어 일렁입니다. 바람이 물을 건드리고 물은 파동을 만들어 바람을 표현합니다.

그 광장의 이면에는 거대한 돔이 있고 그 안에 부처가 앉아 있었습니다. 부처의 머리는 돔의 열린 천장을 뚫고 나와 밖에서도 볼 수 있었죠. 부처가 앉아 있는 공간은 언뜻 보면 닫힌 듯 하지만 그 머리가 밖으로 나와 우주와 소통하고 있었습니다.

건강하게 해달라는 축원을 빌까 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인간이 겪어야 하는 생노병사의 고통은 늦출 수도 막을 수도 없는 것이고 생과 사가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속으로 삼킨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문장은 부처님이 알아 주었으면 하고 바랬습니다.

국영 타키노 스즈란 구릉공원

부처의 언덕을 나와 삿포로로 향하는 길에 들를만한 곳은 많았습니다. 미술관과 공원, 동물원 등 마음에 드는 곳이 많았는데 야외 활동을 하자는 뜻을 모아 공원에 오게 됐습니다.

라벤더가 유명한 곳인 줄은 들어가서 알았는데 자연 경관이 잘 보존된 아기자기한 공원이었습니다. 초대형 미끄럼틀이라거나 계곡 체험 등 미취학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라면 더욱 좋아했을 만한 곳입니다. 이 공원이 온통 눈으로 덮였어도 꽤 좋았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출구 가까이에는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작은 인공 개울이 있었습니다. 식구들은 모두 양말을 벗고 발을 담가 한적한 여유를 즐겼습니다.

삿포로 에스타 – Tonkatsu Tamafuji

늦은 점심은 돈가스를 먹기로 했습니다. 삿포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쇼핑센터 삿포로 에스타에 들러 ‘Tonkatsu Tamafuji’로 향했습니다. 빵가루가 바삭하고 고기가 부드럽긴 했지만 이정도의 돈가스는 한국에도 많이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깨를 직접 갈아 소스를 만드는 것을 처음 해본 아이들은 맛있다고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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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카이도 신궁

신사 중에 격이 높은 곳은 신궁이라고 부른답니다. 개척 3신이 있는 곳이라 하여 마음 놓고 구경갔습니다. 행여 전범이라도 있다면 큰 일이니 신사나 신궁은 잘 알아보고 가야겠습니다.

일본에 갈 때마다 한두군데의 신사나 신궁을 들르게 되는데 대부분 비슷한 느낌입니다. 도심 한가운데에 놀랍게도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일단 들어서면 오래된 나무들과 한적한 오솔길 등으로 도심의 번잡스러움을 잊을 수 있습니다. 공원처럼 기능하는 이런 면은 매우 부럽습니다. 자동차 경적이나 소음,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고 숲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전해주는 공원이 서울에는 몇개나 있던가요?

동구리 오도리점

역시나 빵집을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삿포로에서 유명한 빵집이라는 동구리를 찾아갔습니다.

다누기코지 상점가

(석달 이상 지나서 제 기억이 온전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아들의 이야기도 듣고 옮겨 둘 생각입니다) 저녁을 상점가에서 먹을 생각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꼬치구이집에 앉았습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웨이터가 물과 주문서를 건네고 갔습니다. 그러나 주문서에는 일본어만 가득했고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영어 메뉴를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가 돼있지만 잘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잘 안되네, 다른 곳으로 갈까?” 큰 아들이 뭐라고 하려다가 말을 삼키길래 괜찮으니 이야기해보라고 했습니다. 계속 우물 쭈물 하길래 ‘말을 해라, 의견이 있으면 서로 듣고 이야기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독촉하자 큰 아들이 버럭 큰 소리를 냈습니다. ‘그냥 가는 건 좀 아닌 거 같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내한테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냐’고 확인했고 아들에게는 잔소리를 했습니다. ‘여행 내내 스마트폰만 들여다 보고, 엄마 아빠도 잘 모르는 길 운전하느라 도와달라는 요청에는 들은 척도 안하고, 말도 거의 안 하지 않았냐. 모처럼 큰 돈 들여서 재미있고 행복한 기억 만들자고 온 여행인데 아빠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요지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만, 사춘기 호르몬의 영향으로 넘겼어야 하나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다른 가게로 옮겼지만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선구이와 밥을 먹었던 것 같습니다.

7월 25일

아침은 호텔에서 컵라면을 간단히 끓여 먹고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호텔에서 공항으로 가는 여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호텔에서 확인했을 때는 분명히 한시간 이내의 거리였는데 이상하게 2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목적지를 잘못 셋팅했는지 경로 옵션을 잘못 골랐는지 아내가 네비게이션을 건드릴 때마다 시간이 계속 늘어나 잘못하면 비행기 이륙 시간을 맞추지 못할 상황이 됐습니다. 여차저차 중간에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을 찾아냈는데 그 길은 또 전자 인식 장치가 된 차들만 통행가능한 길이었습니다. 인터폰을 누르고 서로 알아듣기 힘든 영어로 한참을 대화하다가 ‘다음 인터체인지에서 나가면서 계산하라’는 안내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음 ic가 아니라 공항으로 나가는 ic까지 갔고 톨게이트 안내원에게 물었습니다. ‘can u speak english?’ no라는 답이 나오자 마자 둘째가 스마트폰에 미리 입력해둔 일본어 문장을 들이 밀었습니다. ‘길을 잘못 들었고 이쪽에서 요금을 지불하고 싶다’ 안내원은 무전기로 우리 차번호를 불러주며 뭔가를 확인했고 이후에 요금을 지불하고 빠져나왔습니다. 다행히 비행기 이륙 시간보다는 조금 여유있게 도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닛산 렌트 어 카 (신 치토세 공항)

신치토세 국제 공항

공항에 들어와 면세점에 들러 기념품과 선물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치즈케익과 초컬릿과 마그넷 같은 것들 말입니다. 오전의 급박한 상황 덕분에 모두들 밥 맛을 잃었지만 큰 아들은 치토세 공항 푸드홀에서 유일하게 고기 덮밥을 먹었습니다. 언제든 잘 먹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입니다.

인천 공항 제2여객 터미널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귀국했습니다.

봉달이 설렁탕

여행의 끝에는 늘 콩나물 국밥이나 감자탕, 설렁탕 같은 든든하고 얼큰한 음식을 먹습니다. 모두들 설렁탕을 한그릇씩 해치웠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후 밤 10시 즈음 장폐색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저의 30대를 괴롭힌 지독한 통증이 다시 돌아온 것을 알고 저는 절망했습니다. 배가 너무 아파 119를 불러달라고 했고 이후 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복통에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소리를 지르고 신음을 흘리고 온 몸을 비틀고 배겟잇을 부여잡고… 이런 저의 모습을 아내도 아이들도 처음 봤을 테고, 모두들 울먹였습니다. 특히 큰아들은 ‘내가 잘못해서 아빠가 아픈거라고 죄송하다고’ 했고 둘째 아들은 ‘아빠가 아프지 않아야 자기랑 옷도 사러 가지 않겠느냐’고 조금만 참으라고 했습니다. 배가 아픈 와중에도 아내와 아이들에게 걱정 끼치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사이렌을 켜고 분당 서울대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은 침대는 물론이고 소파까지도 환자로 가득차서 휠체어에 앉아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검사를 받고 괴로워 하는 와중에 장이 풀리면서 복통이 가라앉았습니다. CT 결과도 괜찮게 나와 새벽 2시를 조금 넘겨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의 끝에 지옥이 펼쳐질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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