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강력히 추천합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장기인 ‘사물을 통한 섬세한 심리 묘사’가 다시 한번 빛을 발한 작품이었습니다. 최근 감상한 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신경쓰고 집중해서 봤는데 그만큼 이야기가 깊이 있고 상징적이었습니다. 제일 처음 감상한 제인 캠피언의 작품은 ‘피아노’였는데, 그 작품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그녀를 ‘누구보다 뛰어나고 무엇보다 다른 심리묘사’를 구사하는 감독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거래하는 것으로 세상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하는 벙어리 연주자라니!!!)
사람들은 누구나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워 오브 도그’에서는 5개의 큰 에피소드를 통해 인묻들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한편 그것이 그들의 관계에, 특히 포장된 남성성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 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장 마초적이고 권위적으로 목장을 지배하는 필은 한편 동성애자였고 세련된 연주자이면서 예일에서 고전학을 전공한 인문학도이기도 했습니다. 피터는 종이꽃을 만들고 화가 나면 훌라후프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지만 냉철한 해부학자이자 의사 지망생이었고 마침내 필을 살해하는 살인자이기도 합니다. 로즈는 아들을 잘 키울 걱정 밖에 없는 평범한 과부처럼 보이나 극장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예술가이면서 심한 알콜 중독자입니다.
이 세 사람이 얽히고 설키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그 짜임새는 필이 만들었던 가죽 줄처럼 하나의 빈틈도 없이 단단히 꼬아진 매듭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튼튼하고 세련된 가죽 줄 위에 제인 캠피온이 여기 저기 숨겨둔 ‘사물 심리 묘사’가 숨은 그림 찾기처럼 등장합니다. 피터가 올라탄 말안장, 피터가 어루만지는 흉상, 심지어 필과 피터가 바라보는 산등성이에서도 필과 브롱코의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필은 피터에게 애정을 느끼기 시작하지만 피터가 조심스레 손대는 검은 소의 사체는 그 자체로 피터가 꾸미는 죽음의 색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습니다. 로즈를 위해 조지가 구입한 베이비 그랜드 피아노(여기서도 피아노가?)는 로즈를 향한 조지의 마음만큼 고급스럽고 비싼데, 이 피아노를 옮겨가는 바닥은 이들의 평탄하지 않은 관계처럼 흙탕물로 가득합니다.
이런 장치는 작품의 종반까지 매우 느릿하고 섬세하게 작동하면서 관객을 느슨한 즐거움으로 빠뜨립니다만, 갑자기 마무리되는 필의 죽음을 통해 관객은 반전에 가까운 충격을 느끼게 됩니다. 이 역시 매우 충격적이고 효과적인 연출이었고 또다른 재미를 주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흔히 찾기 힘든 진지한 작품이었고 그만큼 다양한 상징과 은유가 가득해 풍미 가득한 파인 다이닝을 경험하는 듯 감탄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