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한달 넘게 블로그를 쓰지 못했다. 2003년부터 시작한 블로그는 햇수로는 22년째가 된다. 놀라운 일이다. 무슨 일을 해도 금새 싫증을 내고 시작만 한 채로 버려두기 일쑤인 내가 22년이나 꾸준하게 해온 일이 있다는 것이 말이다.
지난 달에 뜻하지도 않게 애드센스에서 입금이 됐다. 예전에 꽤 자주 받았는데 오랜만이다.
나는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왜 이 블로그를 쓰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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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는 아이들을 위한 기록
세번째의 암수술을 받은 이후부터 솔직히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모르긴 하지만, 주위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지 않을까?
그때부터 이 블로그는 나를 추억하는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특히 아이들. 내가 살아 있었다면 전해 줄 축하와 격려와 위로와 가르침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남기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어 조언을 남기려고 할 때마다, 괜한 덧말을 붙이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사람은 사실은 겪어봐야 깨닫게 되니 말이다.
무소유를 쓴 법정 스님 조차도 자신의 책을 모두 없애고 이후 다시 출판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런데 여전히 그런 마음은 있다. 나는 23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그 이후 ‘아버지는 뭐라 하셨을까?’가 궁금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아쉬운 것은, 남자와 남자로 마주앉아 술잔을 부딪친 적이 없다는 것. 만약 우리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이 블로그가 그러한 아쉬움을 조금은 해소시켜 줄 수 있지 않을까?
그야말로 다시 펴보기 위한 기록, 특히 요리
자주는 아니지만 그리고 별 맛도 없지만, 가끔 해먹는 요리를 다시 해먹기 위해서 메모처럼 글을 남긴다. 그런데 의외로 이것은 유용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특히 영화
충무로에 마음을 둔 적이 있던 나로서는 내가 소비하는 모든 영화의 평을 남기려고 했다. 작품으로 감상하기 보다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여전히 나는 굉장히 많은 영화를 보고 있지만 이제는 기록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꿈을 거의 접은 탓일 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로서의 지식 베이스
이건 굉장히 오래된 이야기이다. 최근에 그러니까 챗지피티가 막 등장한 무렵 생성형 AI에 대한 뉴스와 소식을 전달해보고자 노력한 적이 있었는데, 복직하고 바빠지면서 그만두게 됐다, 함께 했던 크루들도 바빠졌고. 뭔가를 같이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애드센스? 부업?
블로그로 돈 버는 일에 진심인 친구가 있다. 실제로도 적지 않은 광고비를 받고 있고. 내 경우는 애드센스의 기능 변화나 정책 변화를 보기 위해 이것 저것 추가했는데 이건 어느 때에도 주 목적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재미난 블로그를 발견했다.
그는 마음에 드는 글을 필사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무엇이든 읽히는 글을 쓰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글들로 책을 엮기도 했다.
아?
읽히는 글. 일기조차도 누군가에게 읽힐 목적으로 씌어진다고 했거늘. 나는 어째서 글의 기본을 잊고 있었던 것일까?
기록이든 메모든, 낙서든. 이제부터는 읽힐 수 있도록 작성해야겠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