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의 돌잔치에 갔다가 오랜만에 H형을 만났다. H형과 나도 사촌 지간이지만, 내가 H형에게 갖고 있는 친밀감은 웬만한 형제 못지 않을 것 같다.
H형은 내 유년의 기억 속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그는 내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자전거의 펑크를 수리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참나무에서 장수벌레를 꺼내는 것도 알려주었지만 형은 내가 잠든 사이 그 장수벌레들을 몰래 풀어주곤 했다. 쓸데없는 살생이 싫었던 걸까?
대나무 끝에 철사를 동그랗게 묶어 거미줄을 훑어 매미를 잡는 방법도 알려주었다. 어떤 거미줄이 끈끈한 지, 어떤 거미줄이 끈끈하지 않은지, 철사 끝에 훑어 모은 거미줄은 어느 정도의 끈끈함을 유지해야 하는지도 알려 주었다. 너른 논에 나가 새를 쫓는 것도 알려 주었고 새총을 쏘는 것도, 원두막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도 알려 주었다. 그럴 때면 새털 구름 가득한 하늘이 얼마나 높고 푸른 지 가을 햇살이 얼마나 뜨거운 지 그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원두막에 부는 바람이 얼마나 기분 좋은 지 바람 소리에 섞인 라디오의 지글거리는 잡음이 함께 들려오는 AM 방송이 얼마나 흥겹고 정다운 지 알 수 있었다.
그에게서 나는 형의 모습을 알게 되었고, 무릇 동생들을 대할 때면 형을 떠올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role model이었다.
H형이 물었다. 올해 몇이냐고.
주름 섞인 그의 얼굴, 이제는 대학생이 된 그의 아이들.
고맙다는 말, 언젠가는 할 수 있으려나? 아니 그냥 소주잔을 한번 부딪는 걸로 다 전해질 수 있으려나?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