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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용 고공 택시와 롤리팝

  • yoda 

나는 약속 시간에 늦었다

탁상 시계는 2시 20분 이었지만, 손목 시계는 2시 50분, 그리고 시계탑의 시계는 3시가 훨신 넘었다.

대체 어떤 시계가 맞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약속 장소까지는 한시간 정도가 걸릴 테니 3시가 넘었다면 제 시간에 도착하기는 이미 틀렸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흔들지만, 택시 운전사들은 힐끗 거리며 계속 지나쳐간다. 나를 보고도 저 앞에서 다른 손님을 태우고 일부러 나를 지나쳐 다른 손님을 태우기도 한다.

마음이 급해진 나는 조금이라도 도착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약속 장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차를 잡기로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멀어질 수록 지나다니는 차가 줄어 들었다. 그나마도 속도가 빨라 손을 들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를 보지 못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렇게 30분을 더 걸었을까? 이제 차도에는 한대의 차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어두워 지고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다시 손목 시계를 확인했는데 신기하게도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전력으로 달리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도 같지만 남은 거리는 한참이고 그런 체력은 애초에 남아있지 않다.

맞은 편에서 롤리팝을 입에 문 젋은 여자가 걸어온다.

그녀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금발 머리에 새빨간 립스틱, 대충 그린 짙은 눈썹에 가죽 점퍼와 허벅지가 찢어진 긴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배트맨에 등장하는 악당 ‘할리퀸’과 매우 닮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녀는 롤리팝을 바꿔 물 때마다 엷은 미소를 지었는데, 손목 시계와 차도를 두리번거리며 허둥대는 내 모습을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할리퀸을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고 그렇게 마주쳐 지나갔다.

잠시 후 뒤에서 아주 조그만 녹색 택시가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그리고 세차게 손을 흔들어 그 차를 세웠다.

택시가 내 손짓을 알아 봤는지 10여미터 앞에 가 섰다. 그리고 나를 기다렸다.

나는 손을 내민 채 달려가 택시문을 열었다. 1인용 차였다. 아? 택시가 아닌가? 하는 순간 운전 기사의 뒤 쪽 짐칸인듯한 곳에 아까 그 할리퀸이 끼어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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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인데 불법 영업을 하는건가? 타야 하나? 의심과 의문에 망설이고 있는데 택시 운전사가 말했다

“어서 타, 당신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아니까”

택시 운전사는 내가 이 차를 타지 않으면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을 자신하고 있었고, 심지어 나도 정확히 모르는 나의 목적지를 알고 있었다.

차문을 위로 열고 나는 할리퀸 옆 쪽에 억지로 몸을 끼워 쭈그리고 앉았다. 워낙 좁은 좌석이라 운전자의 발도 다 보였는데 놀랍게도 운전사의 두 발목은 하나로 엉겨 붙어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발이 하나라면 클러치는 어떻게 작동할 지궁금했는데 왼손이 놓인 위치에 손으로 조작할 수 있는 레버가 툭 튀어 나와 있었다.

장애인 특수 차량을 운전하면서 불법 영업이라니, 뭔가 심하게 꼬여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택시는 깜짝 놀랄만한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서 이 차가 속도를 못 이기고 조각 조각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됐고, 혹시 사고라도 나면 모두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속도에 짓눌려 앞을 바라보기 힘들었는데 그 순간, 앞 쪽 도로를 가로지르는 이 차 높이의 절반쯤 되는 깊이의 도랑이 나타났다. 저길 어떻게 건너. 이미 차는 도랑에 뛰어 들었고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대로라면 차가 처박히거나 튕겨 나가야 할텐데, 한참동안 아무 느낌이 없어 눈을 떠보니 차는 도랑 바로 앞에서 수직으로 튀어올라 공중을 날고 있었다.

007 같은 특수 요원이 탈출용으로 사용하는 차라면 가능할텐데.

황당한 상황에 영문 모를 표정을 짓는 내게 할리퀸은 또 미소를 지었다. 이것도 몰라 하는 비웃음으로 보였다.

차는 정점에 달했고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느 놀이 공원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공중으로 천천히 올라 한동안 정지했다가 갑자기 자유 낙하하는 기구처럼 말이다.

그 느낌을 잘 알고 있는 나는 이 차가 잠시 후에 어떻게 될 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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