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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부인

  • yoda 

내게는 친구처럼 지내는 선배들이 좀 있는데, 이 사람은 조씨성을 가졌다
‘조선배’라 부르기로 하자.
아주 재치가 넘치는 선배여서 늘 주위 사람들을 재밌게 해주곤 한다.
아래는 ‘자유부인’을 본 조선배의 일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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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 중에서 제일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영화 아세요?..
예..그게 쉬리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자유부인이랍니다.
정말 말 그대로 ‘문제적’ 영화였다고 하네요.
정비석 소설이 원작이구요, 영화가 만들어진 연도는 1956년입니다.
1956년이면 6.25 끝난지 3년 지난 후잖아요.
그때 먹고 살기도 힘들었을텐데 영화 만들 새나 있었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여하튼 영화를 보다보면 사회적 여건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 다양한 군상들이 나타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용은 다들 아시다시피 대학교수 부인이 춤바람 나는 내용이죠.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건 그 내용이 아니라 56년 시절에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고, 영화 이곳 저곳에 담긴 당시의 풍광들이 얼마나 낯선가 하는 것들입니다.
우선 대학교수는 당시에 무지무지한 상류층이었나 봅니다.
뭐..지금도 상류층에 속하긴 하죠.
대화에 언듯언듯 나오는데 ‘대학교수 부인이 어떻게 이런 걸’ 이라든가 ‘너 좋겠다,대학교수 부인이라서’ 라든가..이런 얘기들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또 좋은 직업으로 꼽혔던게 타이피스트 였나 봅니다.
대학교수는 타이피스트랑 바람이 나거든요.
그런데 이 타이피스트가 매우 촉망받는 직업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요새로 말하자면 프로그래머 정도 되는거 같아요.
그리고 이 사람들, 지금 우리보다 훨씬 더 영어를 많이 사용하더군요.
아침에 만나면 굿모닝..밤중에 헤어질땐 굿나잇..-.-; 하질 않나, 선물을 주면서 ‘프레즌트예요’ 라고 합니다.
그런데 촌스럽게도 프레즌트를 주는 장소가 ‘까치다방’이더군요.
무엇보다 흥미로웠던건 제비춤꾼 역을 맡았던 배우였습니다.
오..송승헌 뺨치는 그 짙은 눈썹에, 올빽으로 번지르르하게 넘긴 머리에는 항상 챙없는 올챙이 모자를 쓰고, 점퍼인지 뭔지 모를 좁은 외투에 짝 달라붙는 8부 바지.
게다가 능수능란하며 고전적인 그 화술이라니요..
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대학교수 부인을 유혹하면서
‘달빛도 고요한데 집까지 같이 걸어가는 기쁨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라고 하거나
조카딸과 키스하는 장면을 본 대학교수 부인에게
‘키스는 작별인사일 뿐이죠, 자유롭게 연애하지만 사랑하는건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등 매우 닭살스럽지만 귀여운 멘트들을 날립니다.
너무 길어졌네..
하여튼 매우 재밌는 영화였습니다.
아..어제 말했던 제비춤꾼 역의 배우 이름을 알아냈어요.
‘이민’이라는 배우더군요.
옛날 영화를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그 후에 이 배우를 본 적이 없는데 혹시 외국으로 이민간거 아닐까요?.. -.-;
이 영화엔 정말 믿기지 않을만큼 닭살스런 장면들이 많은데요,
제가 보기엔 바로 이 장면이 그 중 최고 같아요.
대학교수가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를 만나서 바람을 핍니다.
물론 한국인 여성이지요.
배경은 약간 높은 산의 산책로 같은 곳인데 밑으로는 서울시내가 내려다 보입니다.
서울시내가 지금과는 달리 아주 소박하게 보입니다.
나무 하나를 사이에 끼고 왼쪽엔 타이피스트, 오른쪽엔 대학교수가 서서 수작을 벌이지요.
구도 매우 닭살스럽습니다.
타; 선생님, 선생님 별명이 뭔지 알아요?
교; (약간 생각하는 척하며) 글쎄, 뭘까?
타; (히히덕 거리면서 뜸들이다가) 노터치예요, 손대지 말라는 뜻이죠.
교; 노터치?
타; 네..금을 보고 노다지라고 부르는게 노터치에서 나왔대요, 선생님이 그만큼 귀중하다는 뜻이에요.
교; (타이피스트를 가리키며) 그건 은미가 지은 별명 같군?..
대략 이렇습니다.
그 간드러지는 타이피스트의 더빙하며 대학교수의 은근한 손짓, 끈적끈적한 눈길이 어우러진 닭살 200%의 대사였죠.
자유부인 소설이 나왔을 때 서울대 교수였던 황산덕씨는 이 소설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답니다.
‘저속 유치한 에로 작문을 희롱하는 문화의 적이요, 문학의 파괴자요, 중공군 50만 명에 해당하는 조국의 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흠..중공군 50만이라..정말 표현의 극치 아닙니까.
에로라고는 생각되지 않을만큼 정숙한 영화였습니다만 당시로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보지요?
닭살스러움으로 따지자면 중공군 50만에 해당하리라고 생각되긴 합니다.
ps. 연재되던 정비석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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