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문학세계사 |
올해 두번째로 읽은 아멜리의 이 작품은, 9/11에 영감을 받았음이 틀림없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던 그 해.
그 해, 이 소설이 나오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이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당시 미국의 어떤 여성 언론인은 “9/11은 매우 유감이지만, 이것이 국가 권력이 강화되고 대중의 비판의식을 마비시키는 기제가 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라는 논조의 이야기를 꺼냈다가 세간의 비판과 지지를 동시에 받은 적이 있으니 말이다.
바로 그 해에, 이 소설이 나왔다고 하자. 단순히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혹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혼내주기 위하여 여객기를 납치, 폭파시키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 비극을 장난으로 치환하는 것은 심하다는 평론에서부터 테러상업주의작가라는 비판, 아멜리가 그동안 쌓아왔던 위트와 깊이를 의심하는 여러 사람들.
아멜리는 그게 싫었던 것일까? 그런 이유들이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해석하는 데에 큰 방해가 되었다고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그야말로 한 개인의 사랑은 테러리즘과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2001년이나 2002년에 이 소설이 나오지 않은 것은, 비극이다.
인상 깊은 구절
독자들은 마음에 드는 구절을 한 번씩이라도 꼭 노트에 옮겨 적어보아야 해요. 그 문장이 왜 그렇게 훌륭한지 이해하는 데에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어요.
우선, 난 사랑 이야기의 성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모르겠다.
알리에노르는 칭찬에 민감해요. 언젠가 제가 알리에노르의 글 중에서 어떤 한 단락이 정말로 멋지다고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은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알리에노르가 눈을 감더군요. ‘뭐야, 이 반응?’ 제가 물었죠. 그랬더니 ‘네 말 속으로 숨는거다.’라고 대답하는 거예요.
겨울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다른 계절보다 징후가 훨씬 더 유별나고 고통스럽다. 추운 날의 완벽한 빛은 기다림에 동반되는 우울한 희열을 부추긴다.
종교에서 비롯한 것이든 조국애에서 비롯한 것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것이든 간에 이런 이상은 단어의 형태를 취한다. 아서 쾨슬러의 말이 옳았다. 세상에서 살인을 가장 많이 한 범인은 바로 언어라고 했던가.
“듀라 렉스 세드 렉스 (Dura lex sed lex). 악법도 법이라고 했어.”
“이건 무슨 음악이야?”
“에이펙스 트윈”
“좀 이상하지 않아?”
“이 색깔처럼 환상적인 색을 본 적 있어? 색깔에 빠져봐. 색깔 자체를 느껴보라고. 이 나티에 블루로 당신을 가득 채워봐.”
“나티에?”
“18세기 프랑스 화가의 이름이야. 그 사람이 이 파란색을 개발해냈지. 이런 색을 개발한다는 게 어떤 건지 상상해 봐.”
이렇게 추운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우리더러 인생의 의미를 기억하라는 거야, 추위라는 영원한 법칙만이 우주를 지배해, 만약 존재라는 것을 낳은 불씨가 폭발하지 않았다면 세상에는 차가움과 뜨거움, 삶과 죽음, 얼음과 불 사이의 영원한 싸움만이 계속되었을 거야, 뜨거운 것보다 차가운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돼, 가장 센 건 추위라는 걸 명심해, 그리고 언젠간 추위가 우리를 지배하게 될 거야, 그때까지 살아서 싸워야 해, 당신은 내가 녹여버릴 눈이야.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야.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이 A라는 글자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개선문 (L’ Arc de triomphe)?”
“어휴! 에펠탑 말이야. 그게 A 모양이잖아.”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가방을 가지고 화장실로 갈 예정이다. 아까, 면세점에서 뢰더러 크리스털을 한 병 샀다. 하고 많은 샴페인 중에 왜 이 상표를 골랐느냐고 묻는다면 이 정도 수준이 되어야 내가 계획한 일에 걸맞기 때무이라고 대답하겠다. 내 손에 희생될 이들의 자존심을 봐서라도 최고급품이 필요하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