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좀비는 식상함을 넘어 일상으로 느껴집니다.
조지 로메로 이후 무수한 좀비 영화가 나왔고 끊임없는 반복 속에 둔감해진 자극의 강도를 올리기 위해 다양한 변형을 가하고 있습니다만, 좀비물의 기본적인 서사를 끌어가는 물음은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는 죽은 것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 좀비를 만드는 사람
- 좀비가 된 엄마
- 좀비가 되어가는 친구
- 좀비에게 물려 잠복기인 연인
- 좀비가 되더라도 자기 희생을 감행하는 숭고함
- 좀비보다 못한 추악한 인간성 등
대개 이런 갈등이 엮여 비슷한 일화를 만들곤 합니다.
이 작품은 학교와 학생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한국의 학교가 입시에 죽고 사는 내신 점수 획득처로 변질된 것을 생각하면, ‘어른들은 우리에게 아무도 관심이 없어’ 라는 대사에서 이미 학교와 사회 자체가 살아있는 죽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가 하나도 없는 전교 1등, 성추행과 폭력을 저질러도 권력자의 비호를 받아 처벌 받지 않는 일진, 그 권력에 아부하는 선생, SNS를 타고 실시간으로 전파되는 나쁜 소식, 이게 학교의 현실이었으니까요,
이 작품이 다른 좀비물과 좀 달랐던 점은, 절반쯤 좀비가 된 사람들이 생겼고 학생들은 이들과도 화해했다는 결말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자들과 살아있는 죽은 자들이 어쨌든 같이 살아간다는 점에서, 우리 학교는 우리 세상은 좀더 나아지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