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전 부터 건담 애니메이션을 시대별로 이어보는 중이다. 20여년간 만들어진 모든 작품을 모아 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가끔은 주의력을 잃고 틀어놓기만 할 때도 많다.
역시나 초회차 작품이 보기 좋았는데, 옛날 방식의 거친 셀 애니메이션이 추억을 살려주었고 감독의 반전 의도도 잘 섞였다고 생각한다. 뒤이은 몇편의 시리즈에서는 발전적인 면도 있으나 심하게 잔인한 경우도 많고 유머와 진지함을 마구 섞어서 시청자의 감정을 제대로 아우르지 못할 때도 많았다. 그런데 작품의 그런 오점들이 실은 너무 열심히 만드는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저 웃어 넘기고 말았다.
방금 시작한 MS 08 소대 1회는, 그런 면에서 매우 세련된 작품이다.
어쩌다가 육탄전을 벌이게 된 두 남녀의 싸움. 포로가 될 수는 없으니 죽여달라는 지온군 여자의 요청에 아랑곳하지 않고 상처에 붕대를 감는 연방군 남자. 공기가 희박해질테니 탈출 방법을 각자 찾아보고 10분 후에 만나기로 한다. 시계가 고장난 연방군 남자를 보고 여자는 자신이 애장하는 고급 아날로그 시계를 건네준다.
향후의 갈등과 로맨스를 위한 복선이겠지만 그 장면을 보고 나느 ‘인류애’라는 생각에 빠지게 됐다.
전쟁 중에 만난 적군의 부상을 치료한다는 것은, 그에게 사람의 생명이 가장 소중하다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정상 군인이 되었고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상황에서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사람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보편적이고 마땅한 가치가 있다. 산업 혁명을 이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가치들이 폄하되어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이기적인 판단을 내릴 때가 많다. 그 판단의 여파가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사회의 중대한 문제다. 옳지 않은 판단과 행동이 자본으로 치환되어 다른 사람들도 영향을 받고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점점 돈의 색으로 물들어 가는 것 말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교육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또한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너지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