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합니다.
세간에 화제가 되고 있는 오징어 게임을 보고 몇자 적습니다.
- 가장 큰 장점은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인물, 갈등, 세트, 대사, 줄거리, 카메라워크, 그리고 제목까지 그 어느 것도 과하지 않고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복선마저 너무 정직해서 경마 승부, 소매치기, 형제의 조우, 게임 참여, 과반수 투표, 형제의 조우2, 형제의 승부와 결말, 할아버지까지 무엇하나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을 정도로 직선입니다. 그럼에도 실망스럽지 않은 이유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세부 묘사 때문었습니다. 예를 들면, 홀짝 승부 구슬치기가 구멍넣기로 바뀐다던가, 세모 대신 우산이라던가,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체불이라던가 하는 장면들 말입니다.
- 한가지 놀랐던 점은 ‘어디서 저렇게 이병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구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눈은 나이든 이병헌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고 나중에 캐스팅 목록을 뒤져보고서야 이병헌인 것을 알았습니다.
- 빨간 제복을 입은 진행 요원들은 얼마 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종이의 집을 떠올리게 했고, PS의 로고를 차용한 것도 아주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더군다나 오징어 게임에서 도형을 빌려와 애초에 상표권에 대한 시비를 없앤 것도 군더더기 없음의 하나.
- 작품을 모두 보고나서 제일 궁금했던 건, 누구의 연출인가였습니다. 연출 황동혁, 극본 황동혁. 황동혁은 제가 재미있게 보았던 ‘수상한 그녀‘, ‘남한산성‘ 등을 필모로 가지고 있었고 앞으로도 기대하고 기다릴 감독이 하나 더 늘었네요.
- 오징어게임을 비롯, 구슬 치기나 무궁화 꽃 같은 놀이들은 다시 부활돼면 좋겠습니다. 하루 종일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학원을 몇개씩 돌아야 하는 아이들을 보면 사실 좀 절망스럽습니다.
- 이 작품의 주제는 ‘돈’이 아니라 ‘가치’입니다.
당신의 가치는 무엇인가?
- 450억을 준다면 당신을 사람을 죽일 수 있는가? 450억을 준다면 죽어가는 사람의 목을 찌르고, 천길 낭떠러지로 사람을 밀고, 치매걸린 노인을 속여서 죽일 수 있는가? 애드리안 라인도 ‘은밀한 유혹’에서 같은 질문을 던져서 계속 오버랩되었습니다. ‘백만불을 준다면 당신의 아내가 나와 하룻밤을 보내도 되겠는가?’
- 두개의 질문이 모두 돈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돈’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가치교환수단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동시에 이 질문이 곤혼스러운 이유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캐묻기 떄문입니다. 만일 450억에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답한다면 그것은 곧 45억에도, 4천5백만원에도, 사십오만원에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과 같습니다.
- 그래서 이 작품을 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었지만 인간성을 잃지 않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은, 다소 상투적이고 피상적입니다. 같은 질문을 좀더 깊이 숨겨서 슬쩍 물어보는 ‘은밀한 유혹’이 훨씬 세련된 방식의 문제 제기였다고 느꼈습니다만, 취향의 차이겠지요.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