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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 #넷플릭스 #조훈현 #바둑

  • yoda 
승부 #넷플릭스 #조훈현 #바둑

포스터를 보자마자 이 작품이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고, 그때부터 바둑에 얽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국민학교 몇학년 쯤에 바둑을 처음 배웠다. 그때만 해도 PC가 없었고 인터넷이 없었고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어린이들의 놀거리라야 골목길에서 오징어 게임을 하던가 방 안에서 만화책을 보거나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것이 전부였다. 두뇌를 훈련시킨다는 명분 하에 바둑 학원도 꽤 많았고 동네 여기저기 기원도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은 어른들에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가정이 1,2부의 신문을 구독하던 때였고 각 신문사는 기성전, 명인전, 국수전, 왕위전 등의 타이틀을 걸고 연간 바둑대회를 열어 그 기보를 매일 신문에 실었다. 10수에서 20수 정도의 기보에 맛깔나는 해설까지 곁들여져 비록 기보의 내용은 이해를 못 하더라도 매일 바둑 코너를 읽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다.

이 작품은 시간이 여유로웠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피를 흘리지는 않지만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우는 프로 바둑 기사의 이야기. 한국 최고의 바둑기사가 제자를 받아들이고 제자가 스승의 모든 타이틀을 빼앗고 이후 스승이 다시 제자에게 도전하는 이야기는 진작에 영화로 나왔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바둑을 조금이라도 두어봤다면, 결국 바둑은 자신과의 승부다.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나의 최선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니 말이다.

목숨을 걸고 둔다

막 바둑에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알게 된 기사는 조치훈이었다. 당시에는 일본 바둑이 좀 더 강했던 시절인데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의 신분으로 일본 바둑계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조치훈에게 묘한 존경심을 갖게됐다. 특히 ‘목숨을 걸고 둔다’라며 휠체어를 탄 채로 대국에 임하는 사진을 보면서는 그 비장미에 훅 빠져 들었다. 우주류를 표방하던 다케미야의 바둑 철학도 멋있었고 말이다.

제비와 잡초

바둑책을 사고 신문 기보를 읽고 친구들과 바둑을 두면서 조치훈에 이어 관심을 갖게된 것은 당연히 조훈현과 서봉수다. 둘은 거의 모든 기전에서 맞붙었고 그 치열한 싸움은 흥미로운 요소가 무척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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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은 세고에 겐사쿠라는 걸출한 스승 밑에서 바둑을 배웠고 화려한 행마와 속도감 넘치는 전투 실력 덕분에 ‘제비’라는 별명을 가졌다. 서봉수는 오로지 독학으로 프로 기사가 되었고 모양에 어긋나더라도 이길 수 있다면 정석도 깨는 파격을 가졌고 지독하게 실리를 추구하는 기풍으로 소위 ‘잡초류’라고 불리웠다.

흑과 백처럼, 물과 불처럼, 둘은 그렇게 달랐다.

그러나 라이벌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조훈현의 승리가 훨씬 많았다. 10판을 두면 7판에서 8판은 조훈현의 승리였으니. 오로지 토종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리고 패자에 대한 응원의 마음으로 나는 조훈현보다는 서봉수를 더 좋아했었다.

바둑은 수담(手談)으로 불리우기도 하는데, 바둑을 두다보면 그의 성품이나 인격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주례 선생님으로 모셨던 교수님은 휴머니스트이자 문학과 예술을 아끼며 제자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여주셨지만 선생님의 바둑은 언제나 가장 공격적이었다. 마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바둑판에 쏟아내는 듯 했다.

조훈현과 서봉수의 바둑에서는 무엇을 느꼈을까?

또 다른 라이벌

조훈현과 서봉수의 시대를 이어 마치 그 둘의 모습을 복각한 듯한 라이벌 구도 또 이어졌다.

이창호와 유창혁이다.

이창호는 조훈현이라는 스승을 두었지만 유창혁은 또 독학으로 프로기사가 되었다. 이창호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바둑을 두었고(물론 그가 전투를 못할리는 없다) 소위 ‘계산서를 뽑는다’라고 할만큼 계산에 능해 돌부처라는 별멍을 가졌다. 유창혁은 오히려 조훈현의 기품과 닮았는데 크고 화려하면서도 튼튼한 천재의 바둑을 두는 기사였다.

어쩌면 각 세대에는 두각을 나타내는 누군가가 항상 있고 그 뒤를 또 누군가가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무심(無心)과 성의(誠意).

바둑은 우주만큼 넓고 무한한 변화를 수천년 동안 쌓아온 인간의 지혜로 헤아려보는 게임이다. 그래서 몇백년 전부터 내려온 정석이라는 것이 있고, 정석은 흑도 백도 최선의 수순을 거쳐 양자가 모두 만족스러운 일종의 계약 같은 것이다. 물론 정석을 제대로 모르면 호되게 당한다. 욕심을 부리거나 쓸데없이 겁을 먹으면 화를 얻게 되고 상대를 존중하면 최선의 합의에 이른다는 교훈이 그 정석 안에 있다. 아니 있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전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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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바둑 대회

유창혁과 이창호가 활약하던 시대는 그야말로 바둑의 전성시대였다. 뭐 한중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응창기배라는 세계 대회가 만들어져 세계 최고의 기사가 맞붙는 장면이 연속되는 엄청난 재미. 그런 바둑의 전성기 속에 이세돌이라는 순한글 이름을 지닌 천재 기사가 등장했고 그 즈음부터 나는 바둑과 멀어지게 됐다.

일이 바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아니 무엇보다도 한두시간을 마주 앉아 말 없이 바둑을 둘만한 벗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이세돌, 알파고, 정석

이창호와 유창혁의 뒤를 잇는 천재 소년 이세돌. 그 이세돌이 소년과 청년과 전성기를 건너 뛰어 중년의 기사가 되어 내게 다시 등장했다. 이세돌은 구글이 만든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의 도전을 받아들인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우 의아했다. 이전에도 꽤 많은 대국용 바둑 프로그램이 출시됐었지만 그 수준은 한참 뒤떨어져, 나는 이세돌의 압승을 예상했었다.

체스나 장기에서는 좋은 실력을 갖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어디에나 돌을 놓는 바둑과 달리 체스의 기뮬들은 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따라서 바둑보다는 수 읽기가 계산하기 쉬울테고 그래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이기는 것도 크게 이상하지 않았다. 그라나 바둑은 그 변화의 규모가 체스와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지 않은가? 바둑에서 훈히 사용되는 ‘감각’ ‘뒷맛’ ‘두터움’ 등의 모호한 표현은 수치화하고 계산하기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실제로 그런 모호함이 승부를 가르기도 한다. 기사의 기풍을 표현하기도 하고 심지어 기보에서도 느껴지곤 한다.

“이 수는 뭔가 뒷맛이 안 좋아”

흑/백의 단순함 속에 우주의 변화를 담아 수천년을 이어온, 그리고 무엇보다 감과 예지력이 필요한 바둑에 어딜 감히 인공지능이? 그러나 대국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이세돌은 5판 중 1판을 겨우 이겼을 뿐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정석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인류가 수백년간 검증해 흑/백 모두가 최선이라고 정의한 정석을 알파고는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이겼다.

허망했다. 허탈했다.

알파고에게 인간은 논리나 감각으로 전혀 대응할 수 없었고, 심지어 수천년간 정답이라고 믿어온 모든 수순이 의심받아 마땅했다. 그것은 인간의 자만심을 깨는 계기이기도 했으나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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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대전 이후 두세번 티비로 바둑을 본 적이 있었다.

예전에 바둑 중계는 프로기사들이 다음 수를 예측하거나 방금 전에 둔 수의 의미를 해석해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저 수는 조금 이상합니다. 인공 지능은 저곳 보다는 이곳이 더 낫다고 보는데요? 이곳에 두면 승률이 5%이상 올라갑니다”

대국실에 마주 앉은 두명 프로기사는 인공지능의 답을 맞추는 수험생이 된 듯 했다. 이제 바둑 중계를 볼 일은 없을 것 같다.

바둑을 두지 않은 지는 10년도 더 된 것 같다. 대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밀리의 서재,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등의 브랜드가 그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있어 종종 바둑을 두고 싶다.

사는 게 힘들고 견디는 게 힘들어도 말 없이 나의 한수를 받아주는 벗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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