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가 시작되던 첫번째 밤, 잠이 오지 않아 이북 리더기를 열고 신간 중에 대여가 가능한 책을 다운로드 받았습니다. e-ink 방식의 디스플레이에서는 제목도 저자도 책표지도 잘 보이지 않아 내용은 짐작할 수 없었습니다.
시를 쓰는 남학생과 난독증이 있는 여학생의 이야기였는데 생각보다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혀 ‘이런 류의 소설은 또 처음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상대로 이 둘은 곧 사랑에 빠지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하게 되는데… 문제는 여자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곧 죽게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여러 개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고 둘은 차곡차곡 버킷리스트를 달성해 나갑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와 바다에 가고…
어쩌다가 이런 책을 읽게 됐습니다. 여느 사람이라면 상투적이라며 넘어갈 수 있는 소설이 마음을 몹시 어지럽게 만들었습니다.
연휴의 마지막 날 밤, 결국은 노트북을 열고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버킷 리스트를 다시 만들어야 하나, 나의 마지막 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would, should, could, 내가 희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제는 제가 많이 사용하는 방의 벽 한쪽을 깨끗이 치우고 새로 침대를 놓았고 아이들은 새 침대에 누워 뒹굴거렸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떡볶이가 먹고 싶어 점심에 떡볶이를 만들어 식구들과 함께 먹었습니다. 이런 순간들로 채워나가면 되는 것일까?
인생은 영원하지 않고 언제나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도 않고 또 언제든 끝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마음이 답답하고 무거운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인터넷 서비스 전문가.
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