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영화>를 보고 나서 아무 생각없이 웅얼거리는 B와 G의 잡담 by iCE
B: 우선 이 작품은 철저하게 영화적인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제목 그대로 나쁜 ‘영화’일 뿐이지요. 심하게 말한다면 TV의 시사 고발 교양 프로그램보다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적어도 다큐 영화라는 장르가 이미 존재함을 의식했다면 보다 정교한 어법을 구사해 교묘하게 만들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는 영화와 애니매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감독의 말마따나 적당히 ‘쉽게’ 섞어 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G: 영화적인 틀이라니요? 이 작품은 확실한 변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감독은 ‘쉽게 가자’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거저 먹는 손쉬운 것이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습니다. ‘쉽게 가자’는 감독의 표현은 자신의 입을 최대한 봉쇄하자는 뜻이 아니었을까요? 즉, 영화에서 감독의 시선을 최대한 배제하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그에 따라 작품은 가급적 작위적인 구성을 피했습니다. 그런 의도는 크레딧 타이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음악이나 시나리오, 혹은 편집 같은 영화의 기존 요소가 그대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거 다 없음’ 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겠지요. 그대/B와 같은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결국 카메라를 거쳐야 하는 것이 필름이라면, 또 그러한 최소한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이 영화는 확실히 TV의 시사 고발과는 다릅니다.
B: 문제는, 그렇게 주장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살펴 보아도 우리의 가련하고 무서운 10대들이 저지르는 잘못의 절반은 이 사회와 나쁜 어른들이 짊어져야 한다라는 감독의 강력한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지금은 다시 하고 싶다’와 같은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는 어른들의 위선과 폭력 등을 그리는 시각을 한번 보세요. 경찰과 청소년 선도 위원(이 얼마나 ‘착한’ 사람들입니까!)의 주먹다짐은 아무래도 나쁜 10대와 좋은 어른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근원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이미 카메라가 쫓아 다니는 현실이 실제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아무리 입을 틀어 막았다 해도 이 작품엔 감독의 목소리가 너무 많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아니, 어정쩡하게 들어가 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옳은 표현이겠네요. 차라리 하고 싶은 말을 다 내뱉었더라면 감독이나 관객이나 속은 시원하지 않았을까요?
G:한 가지 주의하고 싶은 것은, 이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어떠한 설득이나 고발은 확실히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할 부분은 청소년들의 공격적인 폭력성이 아니라, 소위 ‘막 나가는 10대’가 꾸려나가는 -동시에 철저하게 무시되고 거부되었던- 다양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요? 영화를 찍다가 행려에게로 시선을 돌리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궁금한 것은, 그들은 정말 ‘나쁜’ 것일까요? 지하철 역사 안에서 뒹굴던 행려와 입(立)간판을 때려 부수던 10대들 말입니다.
B: 그 문제는 논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나쁘다 좋다 하는 개념들의 속성이 너무도 철학적이고 추상적이기 때문이지요. 일례로 담배만 해도 그래요. 에스키모들은 10살이 넘으면 할아버지와 같이 마주 앉아 담배를 피우며 서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다고 합니다. 우리의 시각으론 도저히 상식 밖이지만 그것이 그들의 자연스런 문화이니까요. 따라서 <나쁜 영화>에 나오는 10대와 행려들이 정말로 나쁜 것인가 혹은 자유로운 것인가 등의 평가는 전적으로 관객이 판단할 문제입니다. 즉, 감독이 원하는 바는 그런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지는 모든 행위를 처음부터 다시 의심해 보자는 문제 제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왜 감독 스스로 ‘나쁜 영화’라고 표현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유용하리라 봅니다만.
G: 네, 그렇습니다. 몇 가지의 가정을 해 볼 수 있겠지만 첫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스태프(staff)들 스스로의 작업 자체에 대한 거부감입니다. 실제로 스태프 한 명이 스틸 사진 찍기를 거부하면서 “어차피 나쁜 영화인데” 하는 씬이 있지요? 뒤이어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르겠으나 “각자 나쁜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야기가 나오지요. 그러나 이 역시도 좋다/나쁘다의 결정이 아니라 나쁘다는 개념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염두에 둔 발언인 듯합니다. 두번째로, 이 작품에 등장하는 10대와 행려는 과연 진짜 나쁜 인간들로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요? 역시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전술했듯이 영화는 그들이 가지고 있고, 또 표출해 내는 다양함에 확고한 포커스를 맞추고 있거든요. 그것을 확신하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지하철 검표기를 통과하는 시퀀스입니다. 분명히 표(가치/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통속적인 세상의 가치)가 없으면 통과할 수 없는 그 검표기(제도와 도덕, 관습/일상에서 행해지는 무분별하고 에누리없는 걸러 내기)를 뛰어 넘거나 주저 앉아서 혹은 옆문으로 돌아 밖(세상/보다 성숙하다고 오해되며 통속적인 가치가 더욱 공고하게 굳어진 일반적인 세상)으로 나오거든요.
B: 물론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그런 의미 전달을 위해서는 보다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요? 결국 영화가 효율적이지 못함으로 인해 관객에게 발생하는 이러한 의문이야말로, 제작진이 보다 주체적이고 과학적으로 작업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그저 사람들이 쉽게 연상하는 10대들을 쫓아갈 요량이었더라도 카메라는 쉽게 움직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혹은 어떻게 찍혀야 하는지를 나름대로 정리한 후에 제작했어야 옳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는 시종일관 방만하게 진행되며, 그러한 비효과적인 구성 때문에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 어떠한 메시지도 만날 수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메시지란 계몽이나 설복의 의미가 아니라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바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관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지 않는다고나 할까요?
G: 그런 면이 없지 않긴 합니다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나쁜 영화’임을 표방하고 나섰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영화라는 것의 기본적인 전달마저 무시하고 있다는 뜻에서 ‘나쁘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야 물론 ‘좋다’는 단어를 선택하고 싶지만…). 아무튼, 영화 제목을 이런 식으로 달아 놓은 것은 참 효과적입니다. 여러 가지의 그야말로 다양한 의미를 생성함으로써 작품을 현란하게 변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거든요. 그리고, 나쁜 영화이기 때문에 잘려 나간 몇 컷은 그다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감독이 원하는 대로 가장 나쁘게 이 작품을 찍는 방법은 무한대의 시간을 투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상영 시간이 최소한 24시간은 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화속의 10대와 행려도 우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걸어 다니는 시간이 있으며 밥을 먹는 시간이 있고 잠자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 동일한 방식과, 그리고 동일하지 않은 방식이 같은 비율로 섞일 때만이 비로소 진정 나쁜 영화로서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나쁜 영화라 해도 물적 토대를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동일한 방식은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동일하지 않은 방식마저도 특별한 것만 골라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관객의 혼란은 이런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B: 이런 저런 얘기가 많지만 <나쁜 영화> 자체가 그리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세부적으로는 호감가는 씬들이 꽤 있긴 합니다만. 권력에 대한 일련의 혐오감 같은 것들이 바로 그중 하나이지요. 본드 귀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보여주는 10대가 한 명 나오지요? 내가 본드 귀신에게 잘해 주면 그도 잘해 주고, 내가 본드 귀신을 막 대하면 그는 때로 죽음의 심판을 내리기도 한다는 읊조림은 얼핏 종교를 떠올리게 만들지요. 다음으로 팔씨름을 하는 행려들의 모습을 상기해 보세요. 거기 존재하는 것은 분명히 권력입니다.
G: 그 외에도 금고 털기를 컴퓨터 게임으로 형상화한 것은 나름대로 매우 효과적인 처리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금고 털기는 선악의 개념보다 우선하는 재미라는 거지요. 그리고, 소년원에 들어간 친구 얘기를 하면서는 <나쁜 영화>의 주제라고 얘기해도 좋을 법한 대사가 나옵니다. “가장 힘든 것은 맘대로 못하는 것이다”라는 것인데, 그 장면에서 전 문득 군대를 떠올리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군대는 확실하게 인식되는 억압이지만(그래서 오히려 안전합니다만), 현실은 보다 교묘한 억압이기 때문에 엄존하는 억압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죠.
B: 맘대로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 어쩌면 삶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구속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G & B : 구속? 에잇, 좆나 술이나 먹으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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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상거래와 마케팅, 디지털 컨텐츠, 앱스토어, 모바일 게임에 20년 간의 경력이 있습니다. 최근에 노동조합 전임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삶에는 후회가 없게, 죽음에는 두려움이 없게. 세번째의 암과 싸우는 cancer survivor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