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은 왼쪽 귀에 걸려 있던 무선 이어폰을 빼어 상구의 손에 건네 주었다. 상구는 무선 이어폰을 받아 왼쪽 귀에 꼈다.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수경과 상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마주 앉아 음악을 들었다. 잠시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 담담했다.
수경의 오른쪽 귀와 상구의 왼쪽 귀에 걸린 이어폰은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이어폰에 줄이 달려있지 않았지만 두 사람이 하나의 음악을 나누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유대감을 전달했다. 마이클 잭슨의 맑고 시원하며 몽환적인 고음의 목소리와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뒤섞여 상구의 뇌와 두개골 사이 빈 틈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화음은 뇌 주름 사이 사이로 깊게 새겨졌다. 인간 뇌는 동물 뇌와 달리 주름과 이랑이 있고 그 때문에 넓어진 표면적으로 더 많은 산소를 공급받고 더 많은 정보를 교환한다고 했다.
수경이 건네준 이어폰과 노래는 무한대의 주름으로도 해독할 수 없는 암호문 같았다. 상구는 음표와 음표 사이의 헤아릴 수 없는 신호에 긴장했고 그것을 감추고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팝송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이 노래는 좋아해요”
수경이 먼저 말을 시작했다. 그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손등을 테이블에 올렸다.
“찬 공기 알러지, 들어본 적 있어요?”
“없는데요?”
상구는 반문하며 수경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손이랑 얼굴이랑 다 … 처음엔 뜨거워지면서 가렵다가 계속 차가운 곳에 있으면 점점 더 따가워져요. 따뜻한 곳에 가면 괜찮아지지만 그래도 추운 날에는 잘 안 나와요. 손 한번 만져 보세요.”
수경은 의사에게 환부를 보이듯 아무렇지 않게 오른손을 들어 상구 앞으로 내밀었다. 상구는 왼 손바닥으로 수경의 오른 손바닥을 마주 받치고 오른 손바닥으로 수경의 손을 덮었다. 상구는 수경의 손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볼 수 있었지만 그 손이 뜨거운 것인지는 느낄 수 없었다. 수경의 손은 따뜻했지만 상구는 부드러움을 더 많이 느꼈고 수경의 손을 맞잡고 있는 자신의 손이 더 뜨거울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 정말 그러네요? 지금은 괜찮으세요?”
상구는 짐짓 걱정을 가장하며 잡은 손을 빼냈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게 내민 손을 잡고 사춘기 소년처럼 두근거린 자신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